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nzlerin Sep 13. 2020

독일의 면접 적성 검사

한 기자의 체험기

나는 시험과 면접을 싫어한다-라고 쓰고 있었는데 그 어느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동시에 깨달았다. 특정 검사의 잣대보다 우월한 소수의 사람들 빼고는 자신을 외부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부의 기대를 자꾸 쫓게 된다는 사실이 새삼 우습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거의 나고 자란 덕분인지 시험의 부담을 비교적 덜 느끼며 살아올 수 있었다. 학교에서 등수를 밝히지도 않는다. 우등생끼리 성적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성적의 압박에서 자유롭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의대나 법대가 아니었던 관계로 대학 도서관에서 시험 영역의 책을 선점하려는 쟁탈전도 없었다. 여담이지만 법대에서는 경쟁이 심할 경우 대학 도서관의 서재에서 학우들이 못 찾게끔 관련 책을 숨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렇듯, 특정 전문 분야로 몰리는 수재들 사이에서는 항상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시험을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지나온 길에 나름의 고집과 신념이 있다면 어울리는 길이 알아서 생기더라.  


오늘의 기사는 낼모레 마흔인 기자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면접용 적성 검사를 해본 경험담이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적성 검사나 압박 면접의 개념을 생소해한다.


사장이 되는 건 내 스타일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사장이란 다크서클이 짙고,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사생활이 증발할 정도로 미팅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나는 곧 37세가 된다. 기자로 일한 지 10년이 넘었고 수백 건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점점 고민하게 된다. 이게 다라고? 앞으로 30년간 계속 이럴 거라고? 미련이 자꾸 생긴다. 무엇보다 주체적인 선택을 많이 하지 못한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더 높은 목표를 추진해야 할지, 절대 되고 싶지 않던 사장이란 것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걸 진정 원하는지. 어떻게든 알아내야 했다.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면접 과정의 꽃이자 회사들이 점점 선호하는 방법이다. 적성 검사를 할 수 있는 Assessment Center가 그것이다. 2016년에는 모든 회사의 60%가 이 센터를 이용하는 걸로 알려졌다. 특히 주식 상장 기업 중 90%가 지원자를 평가하기 위해 센터를 이용했다. 오늘날 독일에는 총 300개가 넘는 센터가 있고 고학력 지원자뿐만이 아니라 기술자의 위기 대응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딱히 검사를 받고 싶은 건 아니다. 독일인 정서에 맞지 않고 미군 부대를 배경으로 한 오버스러운 영화 따위에나 어울리는 것이 적성 검사 센터다. 그리고 솔직히, 회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뇌와 성향을 발가벗기기를 반길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지만 요즘은 압박하는 검사의 추이가 감소하고, 대신 회사와 지원자 사이의 합을 알아내는 방향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보다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특정 직업이 요구하는 적성과 자신의 적성이 대조된다고 한다. 


최고의 지원자가 자동으로 최고의 직원이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지원자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직업을 더 즐기는 것도 아니고 퇴사를 안 할 것도 아니니까. "직장을 즐거워해야 일을 잘해요."라고 검사 센터 대변인은 말한다. 매력적인 발상이다. 콩쿠르보다 데이트 중매와 비슷한 검사라니. 이력도 봐야 하고 동기, 성격, 꿈까지 알아본다고 한다.


적성 검사는 약 30분이 걸린다. 맞고 틀린 답은 없다고 한다. 질문지를 읽고 답하기 시작한다. "다음의 8가지 문장을 자신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순서로 정리하시오." 옵션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기", "컴퓨터로 작업하기" 등이 있다. 이런 답변들을 질문마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된다. 처음에는 길게 고민했다. 나는 긍정적인가? 네. 반복 작업을 좋아하는가? 아니오. 남을 설득하는 걸 즐기는가? 글쎄올시다. 계속 이러다 보니 점점 흥미가 떨어지고 힘들다. 답변의 의미가 모호할 때가 많다. 엄마, 피자, 자전거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보는 꼴이다. 15분이 지나자 솔직히 혼란스럽고 짜증 난다. 급해진다.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관심 없음"부터 "관심 있음"까지의 선호도를 표시하라고 한다. 어떤 건 쉽고 어떤 건 모르겠다. 그냥 아무거나 클릭할까? 혹시 검사에 얼마나 성실히 임하는지를 검사하는 건 아닐까?


3일 후에 결과를 받았다. "측정에 의하면 귀하의 프로필은 우리가 제안하는 직업과 71% 어울립니다. 이 직업을 항상 좋아하지는 않으실 것이며, 회사가 바라는 목표를 탁월하게 이루는 데 종종 큰 힘듦이 따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꽤 명확한 결과입니다." 


침을 삼켰다. 별로 좋은 뜻이 아니니까. 이래서는 사장이 못 될 것 같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이메일에 4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딸려 있다. 나의 장단점을 모두 기술한. 그걸 며칠간 외면했다가 결국 읽는다. 계속 침을 삼켰다. 자신의 단점을 유머로 포장하는 것과 달라서 다소 아프다. "당신은 신속하지만 대충 일하는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감독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부족한 결과물을 제출할지도 모릅니다. 체계적으로 일하는 성향은 약한 편입니다. 문제를 분석하려는 관심이 적어서 직업 만족도 및 성취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말문이 막힌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실없는 사람. 의외인 점도 있다: "분석에 의하면 질의응답에 솔직하고 성실하게 답한 정도가 95,2%입니다." 검사 중에 혼란스러웠던 것은 정상인가 보다.


저녁에 보고서를 한번 더 읽는다. 오후에는 약간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솔직히 다 맞는 말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장이 될 재목이 아닌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신은 직업의 성공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딱 걸렸다.


요즘 시대처럼 일의 의미와, 동료와, 본인의 관심분야가 중요하던 때는 없다. 직업이란 어쩌면 사랑과도 같다. 나와 맞지 않는 여자와 잘 되는 것이 초반에 실연을 당하는 것보다 나쁘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 연애 중이라면 꿈의 상대가 나타냈을 때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저, 정말로 사장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런 식의 사장은 아닌가 보다. 원래 자신에 대해 이런 걸 깨달으면 우선은 성가시다. 하지만 반면에는 엄청나게 후련하다.


자신의 성향을 잘 따라가면서도 최상의 모습을 외부에 보이되 왜곡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좋게 보이도록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맞추는 노력은 모든 인간이 지닌 능력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모습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감정 노동이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시험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물살이 흐를 길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에는 시험 아닌 시험이 참 많다. 이렇게 시험으로 채워진 삶이 부담이고 짐이 아니라, 자신만의 모양으로 구불거려서 독보적인 시냇물이면 좋겠다.




이전 04화 의미 없는 안정적인 직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