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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Aug 25. 2023

계획 실패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

4시 30분 기상 결심 15일 차, 오늘의 기상 시간은 6시 10분

그녀는 갑자기 내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것은 충동적이었다. 사실 첫 단추부터 충동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될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나는 별생각 없이 머리를 잘랐고 그것은 아주 실패작이었다. 내 의견이 좀 추상적이었던 것인지, 디자이너를 탓해도 되는 것인지 결과는 영 좋지 못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은 as 커트조차 영 신통치 않았다. 나는 자르다 만 것 같은 머리를 계속 유지하고 다녔다.

머리를 자른 후로, 유독 자존감이 계속 떨어졌다. 무얼 해도 스스로가 못나 보였다. 아예 더 잘라볼까? 아니, 시간이 지나면 머리는 기를 텐데... 하지만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도 이내 지쳐만 갔다. 밀대자루처럼 푸석푸석한 중단발 머리. 나는 결국 기르는 것을 포기하고 '펌'을 해 보기로 했다.

당장 오늘 시술이 가능한 미용사를 골라 퇴근 직후 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2시간 안에 끝나리라 생각했던 시술은 무려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때때로 시계를 보며 '9시 반에는 집에 들어가야 10시에 잘 수 있는데...' 생각을 했고, 9시 20분쯤 마침내 모든 시술이 끝나고 그나마 사람다워진(?) 모습을 마주했다. 부풀어진 머리를 마주하며 디자이너 선생님께 긴 시간 고생 많으셨다고 얘기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전문가적인 태도를 보이던 그녀는 미용실 앞에서 날 배웅하며 한 마디 했다.

"내일은 절대 샴푸 하시면 안 돼요~"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그날 하루 새벽 기상을 포기했다


'앗...' 나는 웃음을 면면이 띄고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 기십만 원을 들여 머리를 했는데 다음날 물로 흘려보내는 것은 아니다 싶다가도,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내 마음속 약속을 어겨야 한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이전 글에도 기술한 바 있지만, 내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이며,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아주 편안한 숙면을 택할 터였다. '다른 새벽 기상 자기 계발서처럼 아침 공부를 해 볼까?'... 전혀 끌리지 않는 제안이었다.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이럴 거면 토요일에 머리 할걸. 다분히 계획중심적인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모든 일이 계획적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습관 다지기를 하고 있을 때 다양한 변수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요즘 양육에 핫하다는 '회복 탄력성'을 나 스스로에게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내일은 늦게 일어날 거야." 그날의 취침시간은 참 오랜만에 오후 10시 30분을 훌쩍 넘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지 않던 우리 집의 기상시간은 평균 6시 10분이었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아이는 첫째. 그리고 그다음 둘째가 첫째의 인기척에 함께 일어난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돌아가며 이미 5시 30분에 일어나 대낮 같은 컨디션을 회복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6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일어나곤 했다. 즉, 굳이 '꼭두새벽 기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기상 시간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유가 없을 뿐. 다른 집은 늦잠 자는 아이들 덕에 오전 9시에도 애들을 깨우곤 한다는데, 우리 집에서 오전 9시란 그저 대낮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일은 늦게 일어나야지~' 하는 나의 '늦은 시간' 기준은 오전 6시임을 미리 일러둔다.


오늘의 미션 : 첫 계획부터 실패한 하루 의연하게 보내기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본인의 입맛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는 성격과, 그에 걸맞지 못한 능력치가 어우러져 '제대로 못할 바엔 안 하고 만다'는 비뚤어진 완벽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가급적이면 실패할 수 있는 계획에 대해서는 플랜 B, C 등 보완 계획을 미리 짜두려는 편이다.

그렇기에, 새벽 4시 30분 기상 계획이 어그러진 전날 밤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그날을 '실패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가 계획해 둔 루틴이 변경될 수 있는 것을 과감히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새벽 기상을 통해 이루어진 나의 모든 알고리즘(운동 및 SNS 기록 등)을 움직이지 못해도, 나머지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새벽 4시 30분 기상을 통해 하루 일과에 대한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얻고 있고,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그것이 바로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건 결국 '강박'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공부 좀 덜 하면 어때~' 또는 '어차피 오늘 운동도 못했는데 오늘 간만에 맥주 콜?' 이런 자포자기적 마인드가 드러나지 않으려면, 모든 일과를 그대로 보내야만 했다.


가장 먼저, 아침 식사였다. 나는 늘 오전 8시 30분 회사에 도착하여 샐러드와 간단한 시리얼을 먹곤 한다. 그런데 오전 내내 운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격한 배고픔에 시달렸다. '아... 오늘 아침 시간도 너무 많은데, 좀 일찍 먹어버릴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식사는 결국 오전 간식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나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입 속에 집어넣으려는 충동을 참았다.


두 번째, 출근이었다. 사실 난 올해 5월부터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계속 걸어서 출근을 하고 있다. 다만 최근 새벽 운동을 시작하면서 굳이 더 걸을 필요가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심한 배고픔에 걸어서 출근이고 뭐고 빨리 회사로 날아가 도시락부터 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하지만 생각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움직임이 더 적었으니, 오히려 오늘이야말로 더 걸어서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라고. 그렇게 나는 빈 배를 움켜쥐고 30분을 걸어 무사히 회사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참고 마침내 마주한 샐러드와 시리얼은 꿀맛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인풋 자기 계발이었다. 현재 나는 영어 공부 어플을 통해 하루 250개의 영어 문제를 풀고, 30분이 넘는 독서 시간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새벽 4시 30분 운동'을 통해 생긴 마음속 동력에 의한 것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첫 번째 단추가 꿰어지지 않았기에, 이 또한 '오늘은 좀 문제도 덜 풀고 책도 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신 오전 일과가 비는 시간에 틈틈이 했던 영어 공부의 기한을 오후까지로 늘리고, 평소에 읽지 않았던 좀 더 쉬운 책을 읽는 형태로 루틴을 마무리했다.


나의 새벽 기상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아이들

 

둘째는 새벽으로 넘어가는 한밤중에 안방을 찾아오고, 첫째는 동이 트기 직전인 새벽녘에 찾아온다. 우리 부부는 지난밤에만 두 번이나 수면 방해를 받았다. 아이가 더 많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러면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났어도 모자랐을 텐데.

첫째가 안방을 찾아온 것은 긴히 오랜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는 늘 거실에 내가 있으니 굳이 안방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새벽에는 본인이 일어나 으레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거실 불이 꺼져있어, 괜한 무서움에 안방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요즘엔 화장실 갈 때 엄마가 항상 거실에 있어서 좋았어." 사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데, 아이들은 거실이 어스름이 밝고 사람이 있는 게 못내 좋았나 보다.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아이들은 내가 운동하는 매일(!) 새벽 5시 35분쯤 나와 나의 동태를 살피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가곤 한다. 이마저도 하나의 일상이 되어, 스스로 적응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 그럼 앞으로도 엄마가 운동하고 있을게. 그럼 화장실 갈 때 덜 무서울 거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첫째는 그 말이 못내 안심이 되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새벽 기상이라는, 나 스스로의 약속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것이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회복 탄력성을 다짐한다


의도치 않게 새벽 기상 다짐을 하루 어기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계속해서 지켜나갈 다짐이라면, 예외적인 경우는 언제든지 있을 것이다.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더라도 휴가 다음날은 평소대로 출근해야 하는 것처럼, 비록 오늘은 조금 긴 잠을 자긴 했지만,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약속한 대로 새벽 기상을 실천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에 실패나 좌절을 느끼지 않을 것. 뜻하지 않은 기회로 나는 그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생각보다 빨랐던 나의 어긋난 계획. 앞으로 또다시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한 층 더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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