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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Nov 09. 2022

어느 날, 시드니

01. 호주의 시작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여기 있게 된 시발점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사춘기는 지나가고 대학 입시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올라왔다.

친구들은 하나 둘 열심히 공부한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지만 열심히 놀고먹기만 했던 나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뀐 날이었다. 

이후 나는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하자고 자신과 약속을 했고,

열아홉 살부터 스물두 살 그리고 스물세 살 후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도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지난 5년간 하와이에서 유학생활도 하고, 싱가포르에서 어학연수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가장 소중한 나의 스물둘과 스물셋을 함께한 시드니 생활을 기록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호주에 들어온 시기를 코로나 막차라고 불렀다. 

호주가 국경을 닫기 직전에 들어온 외국인(워홀러, 학생)을 부르던 말이었다.

나는 국경이 닫히기 바로 직전 싱가포르에서 호주로 들어왔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호주는 내가 온 다음날 국경을 닫았고, 나는 시드니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며칠 후, 락다운(Lockdown)이 시작됐고, 많은 워홀러와 학생비자를 가진 사람들이 호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대로 한국으로 가면 후회만 남을 것 같아서, 나는 '호주에서 버티자' 생각했다.

나의 '외국에서 살아남기'가 시작되었다. 


락다운 시작으로 호주도 많은 게 변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호주에서 일하던 외국인들과 학생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니깐 빈 집이 많아졌고, 쉐어 하우스를 하며 돈을 벌던 사람들이 집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 쉐어 하우스에도 위기가 왔다. 쉐어하우스에 사람이 7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집주인분이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기로 해서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사람을 구하는 집은 여전히 많았고, 시세도 저렴해져서 좋은 집을 금방 구했다.

그리고 락다운이 끝났다. 가게가 하나 둘 오픈하기 시작하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진 가게들은 많았다. 그 덕에 나는 무사히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외식경영을 전공하고, 디저트 카페 주방에서 일하던 나는 호주에서도 카페와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했다. 일했던 곳은 작은 동네 식당이라 대부분 단골손님 위주로 장사를 했다. 주 6일을 일했고 쉬는 날은 친구와 시드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호주에 적응을 해 나갔다. 

일 하면서 한국과 크게 다르다고 느낀 건 손님들의 리액션이었다. 식당의 고객층은 대부분 40-60대 호주인 들이었다. 손님들은 계산을 할 때 간단한 스몰토크(samll talk)와 함께 식사에 대한 피드백을 다양한 리액션과 함께 해줬다. 어떤 분은 주방 입구를 향해 요리에 대해 찬사를 보내줬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손님은 처음으로 내가 만든 요리를 드시고 나에게 직접 너무 환상적인 식사였다며 고맙다 해 준 손님이었다. 그날 너무 벅찬 마음에 부족한 영어로 너무 고맙고 감동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잠들기 직전까지 그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주 6일을 일하고 남은 하루, 나에게 정말 소중한 휴일이 왔다.

월요일 하루만이 시드니를 즐기는 유일한 날이다. 다행히 친구와 휴일이 겹쳐서 같이 놀러 다녔다.

호주의 큰 도시들은 바닷가 근처로 발전하기에 조금만 나가도 빛나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의 휴일은 정말 특별하게 느껴져서 초반에는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매일 새로운 곳을 여행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호주에 산지 1년쯤 되었을 때부터는 여행보단 휴식이 필요했다. 멀리 나가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노트북에 다운로드한 책들을 가지고 공원에서 읽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카페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단골이 되기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 중 만난 강아지와 오랜 친구처럼 놀기도 했다. 

어느새 큰 행복보다 작은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아졌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COVID19) 시기 전부를 외국에서 보내고 있다. 초반에 한국 뉴스에서 '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해졌다.', '아시아인이 인종혐오로 살해당했다.'라는 뉴스를 봤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호주에서도 인종혐오 범죄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살면서 느낀 점은 세상에 사람은 많고 다양하다. 누구는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고, 누구는 아시아인 모두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구는 그냥 이유 없이 자신과 다른 인종을 차별한다. 호주와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걸 경험한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해가 넓다. 그래서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을 견문이 넓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약 2년간의 시드니는 때론 무서웠지만 대부분 평화롭고 여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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