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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Nov 17. 2022

외국인 노동자

02. 호주의 직장

대학교 졸업을 앞둔 21살, 학교에서 추진하는 해외 인턴십을 지원했다. 6주간의 짧은 프로그램은 싱가포르에서 진행됐다. 인턴십이 끝난 후에는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하거나,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다시 돌아가는 거였다. 나는 세 가지 선택지 중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싱가포르로 향하기 직전, 코로나가 세계 곳곳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몇 친구들은 인턴십을 포기했고, 나는 가족들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들으며 싱가포르로 떠났다. 무사히 6주간의 인턴십을 끝낸 후 호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퇴근 후 노을

22살, 해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알바 경험으로 사회생활을 했었기에, 외국 사회생활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자만이었다.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호주에서 직장을 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국인들과 일을 하겠다는 다짐은 사라진 지 오래됐고, 한인 사이트에서만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한인잡(한국인 사장인 직장)이 오지잡(Aussie-Austrailan, 호주인 사장인 직장)보다 시급이나 복지면에서 부족하다는 인식과 사실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쉽게 일자리를 찾기에는 한인잡이 가장 쉬웠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코로나로 상황이 안 좋았던 당시에 얼른 돈을 버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구인이 올라온 한국 식당과 카페들에 모두 이력서를 돌렸다. 다행히 첫 번째 트라이얼에서 바로 채용이 됐다. 


나의 첫 직장은 시드니 외각에 작은 카페였는데 동네가 조용하고 푸근했다. 하지만 채용된 지 하루도 안 지나서 락다운(Lockdown, 지역 봉쇄)이 시작됐다. 사장님은 인원을 최소로 줄였고 나는 하루도 안돼서 잘렸다. 하지만 정확히 잘린 것도 아니었다. 당시 카페 셰프였던 상사의 의견으로 나는 무급으로 일을 시작했다.(요리를 배운다는 명목) 처음에는 일이라고 해도 힘든 거 없이 배우는 단계였기에 재미있게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은 줄어들고 몸은 피곤해졌다. 호주 카페의 오픈 시간은 평균 오전 6시였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해야 했다. 그러다 하루 몸이 안 좋아서 새벽 일찍 연락을 하고 출근을 못 했다. 다음날 일하는 내내 셰프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점심시간 때 서러움이 터졌다. 하루 종일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 셰프는 뭐라도 하려고 열심히 움직이는 나보고 갑자기 그냥 집에 가라고 했고 나도 더 이상 못 참고 뛰쳐나온 일로 그 카페는 그만뒀다. 당시에도 무급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내가 당장 그만둔다고 문제는 없었다. '더러워서 그만둔다'라고 화내면서 집을 가는 중에 사장님한테 문자가 왔다. 요약하면 주방에 관한 일은 모두 셰프님한테 권한을 준거라 자신이 많이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사장님의 마지막 문자 덕분에 카페에서의 일을 금방 잊을 수 있었다. 이 날, 직장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팬 돌리기 연습하면서 쏟은 깨,,


락다운 기간 동안 일자리는 아예 없었다. 일하는 사람들도 잘리는 시기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이력서를 돌린 식당 중 한 곳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면접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또다시 직장을 구했다. 작은 동네 식당이었다. 동네 특성상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손님들은 친근하게 다가와줬고, 많은 걸 가르쳐줬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칭찬과 리액션을 아끼지 않고 해 줬다. 가장 고마운 순간 중 하나다. 식당에서 처음으로 내가 만든 음식이 손님에게 대접된 된 날, 한 손님이 카운터에서 나에게 너무 과분한 칭찬을 해 주었다. 요리를 시작하고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맛있다'라는 표현보다 더 강렬한 칭찬이었다. 다양한 표현으로 진심 어린 따뜻한 칭찬이었다. 그날 내가 느낀 긍정적이고 행복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같이 먹는 사람들이 아닌, 그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어 행복해졌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직원 식사 겸 메뉴 테스트



외국에서 서비스직을 하면서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 외면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법, 먼저 다가가는 법 등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2년 동안 정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60세가 넘는 손님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고, 항상 웃으며 자기 일상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5살 친구가 생겼다. 그 외에 백혈병이 걸린 친구를 위해 다 같이 삭발을 하고 식사를 하러 온 친구들도 만났다. 호주에서 일하면서 생긴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삶의 경험이 됐고, 견문을 넓혀줬다. 이런 경험들은 결국, 내 일상 곳곳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나는 내 모든 삶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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