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래도 만화는 종이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지라며 종이의 질감을 고집했던 나이지만, 이제는 웬만해서는 웹툰을 본다. 작품 퀄리티도 좋은 것들이 많다, 나를 처음 웹툰 세계로 이끌어준 노블레스와 특영반 그리고 정말 내 시간을 웹툰에 매몰시키게 한 덴마와 최근에 완결이 난 비질란테. 누군가는 네이버 웹툰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고, 그중에는 정말 감탄 나오는 연출과 기획을 보여주는 웹툰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테러 대 부활이라는 일요 웹툰은 원래 테러 맨과 부활남이라는 별개의 웹툰이었느냐, 이후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현재 하나의 웹툰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주인공들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기획의 포인트이며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하던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름의 빅 이벤트인 셈이다.
한편 현대 판타지가 난무하는 웹툰 시장에서 오랜만에 인간의 밑바당 감정을 다루는 '당신의 과녁'이라는 작품도 인물들의 표정 묘사가 정말이지 대박이다. 표정 하나하나에서 대사 3-4줄 분량의 감정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읽다 보면 감정몰입이 장난이 아닌데, 조금 화가 날 수도 있으니 미리 염두하고 보길 바란다, 그래도 정말 재밌다.
출처 네이버 토요 웹툰
누군가는 웹툰이 점점 갈수록 양산화되어간다라고 말한다. 장르가 국한되고 초등학생들을 위한 웹툰이 아니냐는 말도 댓글 코멘트로 꽤 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독자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고, 결국 초등학생이 보는 것 같은 웹툰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 돈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과 무관할 수가 없다, 네이버 웹툰 측도 조회수가 잘 나오는 웹툰을 론칭해야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인기가 보장되지 않는 장르를 선택해 미뤄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원한다면 독자의 적극성도 필요하다. 실제로 네이버 웹툰 조회수 기준 중하위권 웹툰들을 봐보면 참신한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들을 독자들이 먼저 다가가서 봐보고 별점도 남기고, 좋은 댓글도 남기고 하면 작가는 작품을 만들 힘을 얻는다. 그런 힘이 쌓여 다음 작품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그럼 독자는 질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된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출처 인스타 책 읽는 광자 (guang_za.book)
한편 작가는 독자가 원하는 것과 자신의 그리고 싶은 만화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 [타입 문의 궤적]은 일본의 유명 노블 게임 제작사 타입 문의 행보를 설명하는 책인데, 여기에서도 타입 문이 시장의 요구와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노블 게임의 방향을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타입 문은 등장인물의 서사를 무엇보다 중시해 무척이나 많은 캐릭터의 대사를 수정 없이 그대로 게임에 투입했다. 그리고 동시에 지루함을 덜기 위해 서비스 장면과 작품 구도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감각적인 부분의 만족도를 올렸다.
그리고 유저의 선택에 따라서 아예 게임의 진행 방향을 바꾸기도 해 유저가 순간순간 선택에 신중을 가하게 한다. 이런 과정들에서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입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타입 문은 작품성과 시장성 모두를 획득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웹툰 시장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결국 살아남는 웹툰은 작품성과 시장성의 조화를 이룬 웹툰이 아닐까 싶다. 너무 낯선 소재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 공감을 살 수 있고 섬세한 감정선을 살려낸 웹툰. 이런 웹툰이 명작으로 인정받으면서 매출도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