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의 웅장한 산들 사이로 사스콰치안 강의 빙하수 맑은 물이 흐르는 분지에 자리 잡은 작은 관광도시 Jasper에 가면 100년 된 우체국과 소방서 그리고 안내소가 있다.
소박한 목재 건물이지만 예전에 전화가 없을 때 쓰던 화재 감시탑도 그대로 있고, 기울기가 급한 미늘형 지붕, 담백한 추녀장식, 돌출창 등을 가진 빅토리아 풍의 건축양식이라 옛 건물이 주는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그런데 민속촌에나 있을 법한 이 건물에서 여전히 우체국 영업을 하고 소방차가 출동한다.
남쪽 Waterton 에는 100년 된 목조 호텔도 있다.
이러면 아마 ‘기껏 100년 가지고 뭘 그래? 우린 650년 된 무량수전도 있는데 ‘라고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건축물의 수령이 아니라 그 전통의 계승 여부이다. 한국에서는 전쟁과 서구 문물 유입에 의한 근대화 때문에 단절되어 지금은 한옥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여기서는 현재 짓는 대부분의 집도 100년 전 건물과 그 구조와 외관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기둥은 고대 그리스 양식이다. 즉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옷이나 제도와 문화도 이들은 과거의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현재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전통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고 그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깊어서 우리처럼 굳이 전통을 되살리자는 인위적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반대급부로 새로운 것이나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즉 캐나다 미국도 100년 전에는 선진 유럽에 비해 신흥국가였지만 이제는 전통이 안정적 기반이 되기도 하면서 반면에 변화 발전의 동기를 서서히 줄인 탓인지 전반적으로 역동성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경쟁과 불확실성에 지친 사람들은 이들의 느린듯한 평온이 부럽기도 하다.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를 보면서 한국을 비교해 보면 마치 유복한 집의 천하태평인 자식과 불우한 집의 패기 넘치는 자식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하고 누가 종국에 더 성공할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한국도 무기력에 빠지지 말고 활기차면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계속해가기를 바란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화와 적응과 소멸이라는 숙명을 안고, 한때 번성의 발판이었던 조건이 환경이 바뀌면 질곡의 족쇄가 되는 변증법적 모순을 가진 우주와 생명의 섭리 속에서, ‘안정과 변화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라는 그 영원한 인류 사회의 과제는 끝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