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록

by 건우
‘인생 역시 똑같다. 세이브 기능이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해야만 한다. 기록하지 않는 인생은 항아리 게임과 같다.'(임승원, 원의 독백)


나는 노션을 애용한다. 내 기록은 대부분 노션에 있다. 요즘은 일기를 색다르게 쓰고 있다. 날짜마다 페이지를 만들어 일기를 쓴다. 8월 27일 페이지, 8월 28일 페이지 이런 식이다. 그 페이지에 들어가면 올해 8월 27일과 2024년 8월 27일의 일기가 담겨 있다. 매년 그 날짜의 기록이 있다. 이렇게 해놓으니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재밌다. (원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록하는 순간만큼 다시 읽는 순간 또한 의미가 크다. 다시 읽을 때마다 마음에 따스한 무언가가 몽글몽글 올라온다. 수시로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생각만 한다.


나는 왜 기록하는가. 왜 기록하는 길을 택했나. 생각의 끝에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는 일이 쉽고 생각은 어렵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생각할 테니까. 생각하는 사람을 너머 기준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기록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때로는 괴롭다.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정말 쉽지 않다. 쉽지 않게 남겨 놓은 기록들을 다시 보면 참 신기하다. 과정의 고됨은 온데간데 없다. 감정은 사라지고 기록은 남는다. 기록은 흐르는 강물에 큰 돌을 하나씩 놓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들의 방학 숙제가 너무 많다고 말하신 선생님이 계셨다. 일기를 일주일에 3편이나 써야 한다며, 방학에는 놀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못논다.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할 줄 알지 놀 줄은 모른다. 우리나라 학생은 공부 자체에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기는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이왕 쓰는 거 책도 읽고 독후감도 쓰면 좋겠고. 교사의 권력을 사용해서라도 기록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 선물이라는 건 나중에 깨닫겠지?


생각이 깊은 사람이고 싶어서 일단 생각부터 한다. 그래서 오늘도 한 줄이라도 기록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