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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가는 선생님

by 건우

“체육쌤이다! 어? 여친이에요? 여친 겁나 예쁘다. 여친이 아깝다! 예쁜 사랑하세요~ 제가 응원할게요~!”


아내와 문구점을 들렀다가 집에 걸어가는 길에 여학생을 만났다. 내가 지도하는 스포츠클럽 여자 피구부 학생이었다. 차도 사람도 많이 다니는 로터리였는데 엄청 크게 말하더라. 나는 미소로 대답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지역이 좁다 보니 지나다니면 인사할 일이 많다. 저번에는 한 아이가 다이소에서 나를 보더니 유리창을 한 손으로 박박! 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입을 막더라. 기간마다 학교도 옮겨 다녀야 하니 아는 사람은 점점 많아진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큰 학교로 옮기고 나서 조심스러워진 장소가 두 군데 있다. 첫 번째는 목욕탕이다. 바야흐로까지는 아니지만 한참 헬스를 다닐 때 패키지로 있던 목욕탕을 애용했다. 참 좋아했지만 마냥 누리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목욕탕에 오는 케이스는 두 가지. 아빠랑 같이 와서 목욕을 당하거나 친구들이랑 와서 냉수영탕을 누비거나. 그곳은 마사지하는 바데풀까지 있어서 그런지 많이들 왔다. 물론 바데풀에서 마사지는 안 하더라. 감사하게도 아직 목욕탕에서 마주한 적은 없다. 하지만 목욕을 빨리 끝낸 적은 있다.


두 번째는 PC방이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고 즐긴다.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PC방을 정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늘 가지 못했다. 수능 끝나고서야 몇 번 갔다. 덕분에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 안에 갈망은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요즘도 혼자 있을 때나 쌓인 일을 끝냈을 때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 PC방에 가는 선생님이라니. 책 제목이라고 생각하니 재미가 있다. 거기서 학생들을 만났다간 뒷일이 감당 안 된다. 분명 남자 학생들일 거고, 친구들이랑 같이 왔을 거고. 한 명이 ‘어? 선생님?!’하면 다른 친구들이 뒤돌아볼 거고. 왜 왔냐고 물어볼 거고. 그럼 나는 천연덕스럽게 게임하러 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누구 잡으러 왔다고 해야 하나. 이건 비밀인데 그런 불상사를 막고자 나는 복장을 조금 챙겨 입는다. 렌즈를 빼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눈이 건조해질까 봐), 체육 시간에 입지 않았던 바지와 티를 입고(기분 좀 내려고), 모자를 꾹 눌러쓴다(머리 냄새 날까봐). 겨울에는 마스크도 필수다. 그러고는 양옆이 조금 막혀있는 1인석으로 가서 게임을 즐기곤 한다.


사실 제법 신경이 쓰인다. 학교 안에서만 선생님이고 싶다. 그래서 다들 출퇴근 거리가 조금 있는 집도 괜찮다고, 큰 지역에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들 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괜히 내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목욕탕에서 만나면 자연스레 인사하고, PC방에서 만나면 너도나도 적당히 하고 가자고 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 시작이 두렵다. 그래서 회피를 선택한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술을 마시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민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영향을 주고 싶고, 또 줘야 하는 게 교사의 삶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주변에 내가 아는 눈이 너무 많다.


교사는 연예인 같다. 근데 이제 돈을 많이 못 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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