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는 늘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 밤에 딱히 일찍 자는 것은 아닌데도 늘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 가끔은 해가 막 뜨기 시작할 시간에 일어나서는 꼭 '아빠'를 깨운다. 그럼 부름을 받은 아빠는 서둘러 '쉬~'를 시키고 물을 마시게 한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자신의 놀거리를 찾아 떠난다.
오늘 아침에는 기가 막히게도 일어난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는 자신의 소변통을 가지고 왔다. 막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하던 나는 급히 손을 씻고 아이를 돕기 위해 당연히 서둘러 다가갔다.
나는 참 소심한 편이다. 아이가 소변을 가리기 시작하거나 놀라서 갑자기 소변 실수를 할 때, 아직도 많이 당황하는 편이다. 반면 아내는 '닦고 세탁하면 되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곤 했다. 그래서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신호를 하면 나는 날듯이 뛰어가 소변기를 가져오는 데, 가끔은 이 반응이 재미있는지 소변이 마렵지 않아도 마렵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날듯이 아이 곁에 나가갔는데, 아이는 나의 손을 뿌리쳤다. '혼자' 해결하겠다는 표현. 나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 '바지만 잡아주면 안 되느냐, 통을 들어주면 안 되느냐' 아이를 설득했지만, 아이는 보란 듯이 혼자 소변을 보고 옷을 입었다. 통을 받아 들고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나에게 둘째는 '하트'를 날리며 장난감을 가지러 뛰어가 버렸다.
집에서의 놀이가 길어지자 아이들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고, 이제는 알아서 놀잇감을 찾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알아서 어제 잘 숨겨놓은 비눗방울 장난감을 꺼내어 밖으로 나가고, 놀이가 끝나면 블록 놀이를 하거나 책을 본다. 두 아이가 함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클레이를 꺼내오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가끔 엄마가 잠자는 숨 속의 공주처럼 잠이 깨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자기가 할 일을 한다. 어린이집을 못 가는 대신 어린이집 놀이를 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큰아이는 동생을 제법 잘 가르치고 보살핀다.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울리기도 하지만 우리 집 남매는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이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이들과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산책'이다. 나는 걷는 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아주 예전에 여의도에서 아차산까지 몇 시간을 걸어서 귀가한 적도 있고, 여러 개의 버스 정거장을 걸어 다니는 일도 흔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이것저것 가져가야 할 것도 많아서 산책 가는 일도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 성장한 요즘 산책은 우리의 아주 좋은 놀이가 되고 있다.
동네 산책도 할만하다. 사실 서귀포에는 관광지가 아니라면 평소에도 길에 사람이 많지 않다. 벚꽃이 활짝 핀 거리를 아이들과 걸어도 한 두 사람 마주칠 뿐이다. 집을 출발하면 아이들은 둘이 알아서 길을 잡는다. 이제는 차가 안 다니는 도로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고, 민들레나 배추꽃이 많이 핀 길도 잘 알고 있다. 아이 둘이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나는 뒷짐을 지고 그 뒤를 따른다.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꼭 사진으로 담아놓고 싶은 모습이다.
비가 오는 날도 둘이 우산을 하나씩 나눠 쓰고 나란히 걸어간다. 길가에 달팽이라도 발견하면 작은 우산 둘이 이마를 맞대고 앉은 모습이 아름답다. 길가에 작은 돌도, 나뭇가지도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잇감이다. 특히 아내는 아이들이 길에서 무엇을 줍거나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티슈를 들고 연신 손을 닦아주는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아이들이 길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즐길 수 있는 아이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길에 핀 꽃도, 길에서 찾아낸 작은 벌레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아주 긴 시간 동안 즐긴다. 그렇게 둘의 표정에 만족한 표정이 어릴 때까지 우리는 걷고 만지고, 웃는다. 그리고 물티슈를 든 나의 손은 계속 바쁘다.
지난주에는 서귀포 초입에 있는 '하논'에 다녀왔다. 제주도에서는 보기 힘든 '논'이면서 지금처럼 모내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없는 우리의 소풍장소다. 아무도 없다. 물론 아무것도 없다. 그냥 넓은 들판이 분지처럼 펼쳐져 있을 뿐. 하지만 우리는 논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싸온 도시락과 간식을 먹는다. 멀리서 백로가 날아다니고, 동네 '개'님도 기웃거린다. 조금만 걸어가면 오리의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냥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꽃을 꺾고, 벌에 놀라서 품으로 안겨온다. 볕은 따뜻하고 아이의 몸도 포근하다. 들꽃을 꺾는 것도 한참, 개울에 소금쟁이 구경도 한참, 작은 돌을 개울에 던지는 놀이도 한참이다. 무엇이든 아이들의 손에 닿으면 놀잇감이 된다. 개울가에 앉아 물고기를 찾아내겠다고 앉아 있는 모습도 아주 한참 예쁘다. 그런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본다.
무엇을 찾는 놀이가 싫증 나면 우리는 돌담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처음 제주도에 와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돌담이었다. 여기저기 비슷하게 펼쳐진 돌담길에서는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운전을 할 때도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거나, 돌아오기 일수였다. 지금은 모든 돌담이 저마다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얼굴처럼 돌담들은 각기 비슷하면서 다르다.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은 진짜 돌담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물론 아이들이 그런 재미를 알리는 없다. 아이들은 돌담 사이를 뛰어 지나간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업어달라고 떼쓴다. 그리고 이내 신기한 것을 발견하면 달려가 버린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작은 아이를 팔에 안고, 큰아이의 손을 잡고 겨우 큰길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지금은 두 아이가 자신의 발로 자신의 의지로 산책을 주도하고 있다. 길에 핀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른은 이해할 수 없이 오로지 둘만 소곤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품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는 꼭 안아주려고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뽀뽀라도 하려고 하면 비명을 지르며 숨어버린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이든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물론 바람직한 일이지만 멀리 걸어가는 산책길에서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오늘 우리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잠시 소풍을 즐겼다. 나는 악당이 되어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거나 아이들에게 쫓겨 다녔고, 멀리 놀이터 수풀에 숨기도 했다. 놀이가 끝나자 길이 없는 주변 풀숲을 온통 헤매며 다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외투와 짐을 양손에 들고 그런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오늘 날씨는 너무 좋았고, 볕은 너무 따뜻했다. 빨래는 잘 마르고, 하루 종일 환기할 수 있었다. 반나절을 뛰어다닌 아이들에게는 풀내음이 풍겨왔다. 그래서 비누 거품을 내어 아이들을 씻길 때, 조금 아쉬웠다. 아이들도 나도 초저녁부터 힘들어했다. 큰아이는 너무 졸려서 거의 기다시피 잠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나도 둘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졸고 말았다. 둘째의 아득한 눈빛은 졸리지만 편안해 보였고, 큰아이의 숨소리도 그랬다.
아이들을 재우고 쓰레기 버리러 나가자 밖은 온통 바람소리와 꽃향기로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건널목을 건너면서 언젠가 아이들의 산책길에 우리가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