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직후, 이 말에 서운해하는 아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인 집이었고, 사촌들도 거의 남자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에 아내가 문득문득 서운해하는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는 왜 우리가 다투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왜, 우리는 우리가 아닌 외부의 요인 때문에 다투는 것일까를 단지 고민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의 다툼은 우리의 문제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다. 주변의 말이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우리는 유연하게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우리 다툼의 원인은 일부는 외부에 있었고, 일부는 미성숙한 나의 이해심에 있었던 것이었다.
많은 다툼이 있었고, 아이를 둘 낳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이제는 아내가 그때 왜 서운해했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그때와는 다르게 대범해졌으니, 정말 이해가 필요한 시점에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 서로 서운함만을 주고받았음이 애석할 뿐이다.
숙소로 들어와, 꽤 힘들어했는데 힘들어하는 와중에 문득 술자리 대화 소재였던 '아이들의 성장과 결혼'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결혼을 한다면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울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남성들처럼, 나도 '남자는 울지 않는 법'이라고 배웠고 그 배움에 꽤 충실한 편이었다. 물론 아들에게 그런 태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그날은 상당히 감정적이었고, 우리 아이가 결혼을 해서 우리 곁을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견딜 수 없게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큰아이는 5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냥 눈물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이 잠든 곳을 피해서 혼자 오열에 가깝게 울어 버렸다. 혼자 생각만으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괜히 부끄럽고도 슬픈 밤이었다.
아마 그 생각 속에서는 '딸은 보내고, 며느리는 맞이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사실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연락을 안 하거나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어리석고 감정적이었을까.
그런데 그 이후로도 아이들의 독립이나 결혼을 이야기할 때, 눈물이 글썽거릴 때가 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놀리기도 하고, 아이들은 이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내가 딸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쏟는 민폐 아빠가 될까 봐 걱정이 되곤 한다.
아마도 요즘 마냥 행복하기만 한 아이들은 사춘기의 터널을 거치면 각자의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이곳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편이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서 평일을 보내기도 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기도 한다. 혹은 취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기도 하니, 아마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우리 품을 떠날 것이다.
사실 품을 떠나는 것은 딸아이뿐은 아닐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품을 떠날 것이고, 그러고 싶어 할 것이고 정작 보내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일 테니까. 건강하고 당찬 큰아이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면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갈 것이고, 어르신 같이 침착한 둘째 아이는 아마 조용히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웃는 낯으로 우리를 떠나지 않을까.
오늘은 바나나를 작게 잘라서 물감 놀이하고 있는 아이들 입속에 넣어주었다. 아기새처럼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고 말았다. 딸아이는 아기 때, 뭐든 주면 잘 먹었다. 수저로 뭐든 떠서 가져가면 작은 입이 열리고 오물오물 움직였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런 기쁨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요사이 큰아이는 자신의 밥을 후다닥 먹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자기 하던 일을 하러 사라져 버린다. 자기 방으로 사라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찡해오곤 한다. 둘째도 요새는 자기 손으로 먹으려고 한다. 바나나도 껍질을 벗겨 주면, 먹지 않고 자기가 직접 바나나를 집어서 껍질을 제거하고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들 입에 바나나를 넣어주는 일은 의도하지 않았던 기쁨이 되었다.
저녁 시간에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둘째를 타박했지만,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주는 일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큰아이가 혼자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는 일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잠에서 깨어보니 자정이 넘어 있었고, 거실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곁에서 잠들어 있는 큰아이는 아기 같은 표정이었고, 막 뒹굴었는지 긴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아이의 따뜻한 손을 꼭 잡으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거실로 나갔다. 반겨주는 아내 곁에 앉아 함께 텔레비전을 보니, 언젠가 아이들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나면 그때, 이렇게 둘이 집에 남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나의 아이들을 위해, 조금은 편안하고 따뜻한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언젠가 힘들어할 때, 따뜻하고 힘이 되는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