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이상 된 일이다.
연애할 때 아내는 나를 종종 기다리게 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면 한참 있다가 나타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길어지는 기다림에 지쳐서 아내의 집 앞까지 가기도 했다. 그래서 데이트가 있는 날은 늘 가방에 책 한두 권을 넣어서 가곤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기다림이 싫지는 않았다. 혼자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도 싫지 않았고, 미안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서 내리는 아내의 모습도 싫지 않았다. 영화 시작 시간이 지나서 광고가 끝나기 전까지 영화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여러 해를 살았지만 한 번도 남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남산에 갔고,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산타워에 올라가 봤다.
무엇을 사거나, 줄을 서야 할 때, 날씨가 춥거나 너무 덥거나 사람이 많거나, 미세 먼지가 심할 때, 기다리는 것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아마 기다리는 일을 싫어했다면 정말 못 견뎌했을 수도 있을 터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가, 태도가, 자질이 되어 있었다. 잠은 적게 자고, 정적이며, 무엇보다도 기다림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도 약 8시간의 기다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빠, 한 번만 줄 서면 안 돼?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온 제주도에 유명한 돈가스집. 저걸 꼭 저렇게 줄 서서 먹어야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 그 호랑이 같은 동그란 눈을 마주 보며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 큰아이는 떼를 잘 쓰는 아이가 아니었다. 마트에서나 장난감 가게에서도 갖고 싶은 것이 있다가도 쉽게 설득당해주는 기특한 아이였고, 떼를 쓰고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을 본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태생이 쿨~한 여자. 그런데 아이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하니 딱히 거절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아내의 눈빛.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그러마하고 이야기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갑자기 찾아왔다.
날은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날. 바로 오늘이라고 아내가 말해주는 날. 나는 옷을 두툼하게 입고 돗자리와 책과 완전히 충전된 스마트폰을 들고 중문으로 향했다. 새벽 3시. 이미 사람들은 주차장 아래까지 한참 줄 서 있었고, 몇 명은 텐트를 설치하고 아예 안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 다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기에는 결심이 너무 굳었고, 가족들의 기대가 너무 컸다. 돗자리를 펴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도 춥지는 않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뿐 사방은 조용했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가 한 달, 일을 나간 적이 있었다.
8시에 출근하고 5시에 집에 오는 일이었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쉬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없었고, 큰아이가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내를 깨운다. 아내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출근을 하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아침을 먹이고 손과 얼굴을 씻기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가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유를 먹을 때도 아니었고, 기저귀도 하지 않았다. 작은 아이와는 달리 먹을 것을 크게 가리지도 않아서 무엇이든 입에 넣어주면 잘 먹었다. 한창 아이와 어색할 때도 지나 서로 많이 익숙해져서 아이도 이제 더 이상 나를 보고 울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 영상물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아이와 무엇인가를 하고 놀아주어야 하는 데, 나는 아내처럼 재주가 없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시간을 잘 보낸다. 쿠키를 만들기도 하고, 밀가루 놀이, 모래놀이를 하기도 하고 역할놀이에서 동시에 여러 역할을 소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아이와 제대로 놀아준 적이 없었다.
겨우겨우 아이와 놀아주고, 엄마들만 참여하는 공동육아모임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가서 공동 놀이를 하면 아이는 낮잠을 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아내의 귀가를 정말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마중하러 오는지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면 정말 지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그 이후였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육아를 도와줄 가족도 없이 낯선 곳에서 아이와 딱 둘이. 얼마나 나의 귀가를 기다렸을까. 내가 빨리 돌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등을 보듬어 주고 마음을 안아주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점점 바빠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없이 늦게 귀가하는 나의 모습에 얼마나 힘이 빠지고 많이 슬펐을까.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은 나의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참 마음이 아팠다. 아내의 마음의 백분의 일도 못되었겠지만.
막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아내와 둘째가 나를 찾아왔다. 차에 작은 텐트와 밥과 컵라면을 싣고. 둘째가 자다가 아빠가 없어서 울었다고 그래서 일어난 김에 먹을 것을 싸서 왔다고.
우리는 아주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타임에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다. 8시간의 기다림을 뒤로, 예약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아내의 환대를 받고 시간을 보내다가 돈가스 집으로 돌아갔다. 돈가스는 맛있었고, 나는 사방에 자랑을 했다. 아이들은 행복했고, 아내도 즐거웠다. 그리고 나는 뿌듯했다.
아마 아내의 기다림을 이해하지 못한 예전 나의 중심은 '가족'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 모든 분주함의 원인은 나의 욕심이었다. 정말 나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했던 어리석었던 시절이었다. 가끔, 아내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묻는다.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데, 사실 나는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다. 어느 곳으로 어느 시기로도. 지금 우리 네 명이 함께 있는 이 시기에 머물러 있고 싶다. 다시는 아내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 기다림은 오직 나의 몫이므로. 나는 어떤 과거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었고, 작은아이는 낮잠을 일찍 자고 일어났다. 아마 초저녁이 되면 아이들도 나도 견딜 수 없게 될 터였다. 얼굴에 온통 돈가스 기름을 묻히고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대는 아내와, 어리석게도 중요한 일을 늘 뒤늦게 깨닫는 아둔한 나 역시 오늘 저녁에는 행복하고 깊이 잠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