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일기, 통증.

by 지승유 아빠

아주 오랜만에 병원에 갔다.


큰아이는 나를 닮아 잘 아프지 않는다. 감기도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물론 아주 아기일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프고, 열도 나고 이유 없이 보채서 아이가 제대로 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병설유치원을 들어간 후에는 잘 먹고 잘 자고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요새는 두 아이가 밥을 먹은 후에 냉장고나 싱크대를 털어 간식을 꺼내 먹는 통에, 뭐든 사다 놓을 수 없을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알아서 화장실을 가고, 책장에서 읽을 책을 골라 자기 방으로 향한다. 혼자 밥을 먹고 입을 닦고, 간식을 찾아서 먹고, 동생도 먹이고, 투덜거리면서 공부도 하고, 씻고, 졸리면 침실로 들어가 잠든다.

이 당연한 일상이 참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고맙고 감동스럽게 느껴진다.


요새 두 아이를 합친 몸무게는 40kg이 넘었다. 그것도 훌쩍. 아내는 이미 아이들과의 몸싸움이나 몸놀이를 포기했다. 큰아이는 물론, 작은아이라도 작정하고 덤비면 아내는 당해내지 못한다. 카리스마는 1등이지만 체력은 4등. 그래서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바로 아빠다. 아예 우리 둘째 아이는 '아빠 놀이동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자유이용권도 없이 무상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함께 덤비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들 때이다. 아이들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내가 받아주는 놀이인데, 아이들은 공중으로 뛰어내리는 새로움에 신이 날지 몰라도, 나는 혹시나 아이들이 떨어져 다칠까 봐 가슴을 졸이며 아이들을 받아주곤 한다.

그런데 큰아이가 25kg을 넘기고 나자 이 놀이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은 또래보다 좀 큰 편이다. 거기에다가 몸무게까지 나가자 내가 조금만 아이들을 잘못 받아도 아이의 발이 땅에 닿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웃는 표정으로 뛰어내리지만 나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받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해 있게 된다. 그것도 한 번 시작하면 30분씩을 뛰어내리기도 하니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홈트레이닝 즉, '홈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말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들을 들어 던지기 일수도 있고, 아이들을 받다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힘을 줄 때마다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몇 년 동안 병원은 건강검진 외에 다녀본 적이 없으므로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쉬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아무 경각심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쉴 수가 없었던 것.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는데, 팔을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오른쪽 어깨 근육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아이들이 올라타려고 하면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아이들이 오른쪽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몸을 돌려 피했다. 큰아이는 기특하게도 어깨를 주물러주겠다고 다가왔지만 피부가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너무 심했다.


나는 정말 잘 아프지 않은 사람이다.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고 독감도 남들보다 빨리 치유되며 멍도 빨리 사라지고 상처도 빨리 지혈되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육체적 아픔에 둔감한 편이다. 아내가 처음 아이를 출산하고 팔이 시리고 관절이 아프다고 했을 때도 위로해주기는 했지만 그 아픔을 모두 공감할 수는 없었다. 공감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을 잘 모르니 그 통증의 절실함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큰아이에 이어서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도 무통주사 없이 자연분만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산부인과에는 당시 여러 명의 산모가 있었는데 무통주사를 맞지 않은 것은 아내뿐이었다. 분만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아내의 고통스러운 소리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큰아이 때는 현장에 계속 있어줄 수 있었는데, 둘째 때는 밖에서 큰아이의 손을 잡고 앉아 있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내의 고통스러운 음성만 듣고 있어야 하는 무기력함. 큰아이 때, 공감해주지 못한 무심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차올랐다. 꼭 잡고 있는 큰아이의 손이 큰 위로가 되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아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열심히 주무르고 지압해주기 시작한 것은.


어깨 한 부분, 그것도 손톱만 한 곳에서의 통증만으로도 온몸이 저리는 것 같고, 기분이 좋지 않은데, 아내의 손목은 그리고 허리는 특히 출산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통증은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료를 받고 찜질을 했다. 낮에는 견딜만했는데 밤에는 솔직히 좀 괴로웠다. 잠이 들려고 하면 어깨 안쪽부터 아주 작고 집요한 통증이 몸을 타고 흘렀다. 자꾸 뒤척거리고 뒤척거리다가 아내가 깰까 봐 거실에 나와 누웠다. 삼 일을 세 시간씩도 못 잤다.

어제는 밤에 찾아온 통증 덕에 아내와 드라마를 보았다. 아내는 깊이 잠들지 못하는 나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고, 그렇게 새벽에 진통제를 먹고 아이들 곁에 누웠다. 나는 옆으로 누워 잠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만져지지 않아도 행복하게 잠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통제의 약기운이 퍼지자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곁에서 나는 편안한 숨소리가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제주도는 비가 많이 내렸다. 외출 후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은 온통 비를 맞고 난 후에 씻고 있었다. 아내가 찍은 영상을 보니 아이들은 빗물을 마시고, 머리를 감고 빗속을 강아지들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속옷까지 푹 젖어버린 아이들의 옷을 세탁기에 넣으며 나도 모르게 혼자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빗속을 뛰어다녀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아이들이 얼마나 다행인지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은 통증도 많이 사라졌다. 씻고 나온 아이들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빠에게 올라타고 싶어 했지만 아내의 경고에 다들 업히는 것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아마 아이들은 초저녁부터 피곤해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나도 그 편안한 숨소리 곁에서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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