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아기일 때부터 아이들의 표정이나 말투를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곤 했다. 아내는 자주 질겁하기는 했지만, 삐죽삐죽하는 아이의 입술이나 얼굴 모양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변하게 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표정의 순수함이나 귀여움의 정도는 무척 아주 무척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아주 아기일 때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흐르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온통 흘러가곤 했는데, 아이가 크기 시작하고 점점 지적인 놀이를 시작하게 되면 상황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큰아이는 역할놀이를 말이 좀 통할 무렵부터 시작했다. 아내는 사실 아주 훌륭한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편이기에 어떤 역할도 어떤 대사도 아주 능숙하게 소화하곤 했다.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역할 놀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정도로.
그에 비해 나는 상당히 열등한 놀이 상대인데,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딸의 스토리 전개를 잘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엇인가 자아를 버리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인데, 나는 자꾸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드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할놀이에서 좋은 배우는 못 되는 편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이들의 역할놀이는 어른들의 상식을 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놀이를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큰아이는 요새 어떤 역할로 시작해도, 남녀관계나 학교 수업으로 놀이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요놈 봐라'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역할놀이의 흐름 안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집어넣고 전체 흐름에 맞추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에 비해 둘째의 역할놀이는 이제 단순한 형태를 갖춰가는 수준이라 결국 칼싸움이나 몸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아내가 상대역이어도 문제가 없던 것이 요새는 내가 아니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과 파괴력이 많이 늘었다.
둘째는 칼싸움도 잘하지만, 누나와 함께 공주놀이도 잘하는 편이다. 누나가 실증 나서 입지 않는 치마를 맡아두고 즐겨 입고, 머리에도 쓰고, 그 복장으로 춤도 춘다. 그 모습을 보고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이 어린 시절에만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니 얼마나 소중한 모습인가.
그래서 무도회 장면에서 딸의 춤 상대도 하고, 아들의 춤 상대도 할 수 있다.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 특히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나는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도 외우게 하고, 함께 부르는 것을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래서 어디 놀러 갈 때 아이들과 김광석 노래도 부르고, 이문세 노래도 부르고, 흘러간 옛날 노래도 불렀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은 내가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노래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 노래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래서 요즘에는 가상의 무대를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춤추고, 노래하고 우리는 구경하는 역할을 주로 소화하고 있다. 구경하는 역할이라니, 이건 환자 역할로 누워 있는 것만큼 놀이에서 날로 먹는 것이 아닌가.
아빠, 따라 하지 마.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흥얼흥얼 노래라도 따라 부르려고 하면 작은 아이가 하는 질책의 말이 조금 서운하고 묘한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얼마 전까지 세수시키고 발닦이는 것은 내 역할이었는데, 딸아이가 혼자 들어가서 세수하고 손발을 닦고 나올 때, 욕실 앞에서 수건을 들고 느낀 기분과 비슷한 기분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크고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씻고 스스로 자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씻고, 자기 자리에서 잘 잠드는 날이 오자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 없는 둘째를 더 안고 다니며, 씻기고 먹이고 재우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언젠가는 친구들과 영화도 보러 가고, 휴일에 외출도 할 것이며 아내와 나는 그렇게 집에 남을지도 모른다. 손톱도 발톱도 스스로 잘 깎는 그 날이 오면 뿌듯하지만 조금은 슬플 것도 같다고 아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다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아마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조차 없어지겠지.
오늘은 해가 너무 좋아, 사람이 없는 곳에 일부러 찾아가서 마음껏 뛰어놀게 놔두었다. 큰아이는 초저녁부터 피곤해하더니, 이를 닦고 나자 이불속으로 파고들어가 버렸다. 아이의 곁에 누워 머리 위에 손을 올리니, 아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커 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꼭 안아주자 아이는 피하지 않고 마주 안아주었다. 조만간, 안아보자고 하면 징그럽다고 하기 전까지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꽃이 피고 있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혹시 아이들이 새벽에 이불을 덮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보일러를 조작하고는 잠든 아이들 곁에 다가갔다. 따뜻하게 데워진 아이들의 발을 한 번씩 잡으며 아이들이 조금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오늘은 아이들이 쑥 커버린 꿈을 꿀 것 같아서 쉽게 잠들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