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일기, 얘들아 싸우지 마.

by 지승유 아빠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무척 날이 맑은 봄날이었다. 미세먼지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큰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 갔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갔다. 업무도 무난했고, 동료들과 소통도 잘되고,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울음을 들었을 때도, 제대로 상황이 판단되지가 않았다. 주차장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고를 때도, 아내에게 말을 건넬 때도 딱히 큰 자각이 있지는 않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그랬다. 지하철이 한 정거장, 한 정거장 목적지에 가까워오자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건대입구역에 도착했을 때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병원까지 걸어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사실 우리는 딱히 사이가 나쁜 형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엄청 좋은 형제도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남들만큼 가까이 지냈고, 철이 나고부터는 친구처럼 지냈다. 가끔 함께 밖에서 둘이 술자리를 가지는 것을 동생은 좋아했고, 나도 나쁘지 않았다.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명절 이외에 서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가끔 통화를 했다. 그냥 평범한 형제였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처럼 평범하게 함께 늙어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 다른 형제와 다른 점일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오고, 나이 어린 조카 대신 인사를 하고, 틈틈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분명 많이 슬펐던 것 같았는데 내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주변에서 '너라도 정신 차려야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수많은 위로와 너무 힘들어하는 가족들 중에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무너진 순간은 병원에서 떠나는 날 아침, 미사 중이었다. 순간적으로 미사가 끝나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동생을 보내기에는 무엇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고, 충분히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사는 끝났고, 모든 것은 마무리되었다. 유골함이 정말 뜨겁게 느껴졌지만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유골함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었다.


둘째를 낳고 처음으로 가족과 이틀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걸 깨달은 것은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한밤 중, 밤에 혼자 남겨졌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정말 몹시도 보고 싶었다. 아내의 작은 위로와 아이들의 포근한 숨소리가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그다음 날 공항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음이 너무 설레서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출구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몇 년 만에 가장 진심을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몇 달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문득문득 멍하게 지내는 일이 많았지만 우리는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크고 작은 일이 있었고, 마음 아픈 일도 있었지만.


난 동생 필요 없어. 동생 없었으면 좋겠어.


평소보다 크게 화를 낸 날은 정말 평소 같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다투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을 씻기려고 더운물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딸의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와서 닿았다. 그리고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큰아이는 서운했고, 둘째 아이도 어리둥절했으며, 아내는 이해했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실수를 인정했지만 큰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그래도 이름 부르면 대답하는 동생이 있잖니.

동생이 정말 없으면 많이 슬프단다.


큰아이에게 사과하며 말을 덧붙였다. 아이는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랬다. 그날은.


나는 아이들이 결코 다투지 않고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픔이 많이 가라앉은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다투는 일도 그냥 지켜보는 편이다. 아내도 그렇다. 사실 아이들이 다투는 모습은 꽤 귀여운 구석이 있고 그렇게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 주지 않았으면 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서로를 괴롭히는 일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아주 먼 훗날 스스로를 괴롭힐 수도 있으므로.

요새 두 아이가 다투는 모습은 일 년 전보다 한 단계 차원이 달라져 있다. 제법 맞싸움이 형성되어서 육체적 폭력이나 폭언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 아이의 주고받음을 구경할 만하다. 둘째가 제법 말대꾸를 하는 모습이 자못 뿌듯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국은 둘 중 하나가 울거나 둘 다 울거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제법 성장해서 누나가 싫어하는 일을 일부러 찾아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은 불같이 화를 내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싸워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나의 불같이 화냄이 일으키는 부작용이 분명 더 클 것이므로. 단지 조금 큰 소리로 반복해서 말할 뿐이다.


얘들아 싸우지 마.


저녁에 끓인 카레는 다행히도 인기가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저녁 후에 먹을 간식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당근까지도 둘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사를 준비를 한 보람이 있었다. 간식을 먹고 아이들은 사이좋게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한바탕 놀다가 잘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나를 잡고 빙빙 돌았는데, 둘째는 손을 놓치고 허벅지를 식탁에 부딪혀 엉엉 울어버렸다. 멍든 아이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쓸어주는데, 아내와 큰아이가 아프다고 우는 둘째 주위로 모여들었다. 네 명이 아주 가까이에 모여 앉아 있는 체온에 울고 있는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아이들이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과 아내와 다투지 않고 싶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이나 서운한 감정은 아주 긴 시간을 지나서라도 나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므로.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은 다음 외면하기보다는 오늘 둘째의 멍든 허벅지처럼 상처를 위로해주기 위해 모여드는 가족이고 싶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일 년 전 동생을 보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를 보내야 하고, 보낼 수밖에 없다면 보낸 후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혹은 아내가 나를 잃고 나서, 언젠가의 일 때문에 후회하고 상처 받지 않게 해야겠다고.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위로받은 것처럼 나도 위로가 되고 싶다고.


아이들을 재워놓고 동생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오랜만에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내 곁으로 돌아갔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아내의 볼을 쓱 쓰다듬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곁에 앉았다. 곁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