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계약, 집 짓기 시작!

by 슬슬

2025. 1. 7. 건축사사무소와 설계 계약


2023년부터 3년 일기장을 쓰기 시작했다. 날짜가 쓰인 한 페이지에 2023, 2024, 2025년의 일기를 한 칸씩 쓰는 형식의 일기장이다. 작심삼일을 매주 새롭게 하는 1월만 열심히 쓰고 2월부터 12월까지는 일기를 쓴 날보다 안 쓴 날이 더 많다. 3년을 썼다기에는 빈틈이 많은 일기장이지만 간간히 펼쳐볼 때면 그나마라도 끄적여둔 내 엉덩이를 토닥이고 싶다. 2025년에도 1월이 찾아왔고, 다이어리 한편에 해빗트래커까지 만들어 마지막 3년째의 일기를 쓰고 있다. 아직 게으름이라는 타고난 초심을 잃지 않은 나는 해빗트래커의 빈칸에도 아랑곳하지 않아서 쓴 날보다 안 쓴 날이 더 많다. 그래도 2025년 1월의 일기를 쓰다 보면 2023년과 2024년의 1월을 뒤적거리게 된다. 2024년 1월 어느 날의 우리 집 풍경은 이랬던 것 같다.


오빠와 나는 식탁에 앉아 새로 알게 된 '농촌주택개량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다다는 매트에서 놀고 있는 평화로운 저녁. 다다가 갑자기 웃으며 달려왔겠지. '달려'왔을 것이다 분명. 나와 남편은 동시에 말했을 거다. "뛰지 마!" 한참 뛰기 시작한 아이를 뛰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과 괜히 몰려오는 미안함에 이런 대화를 나눴겠지. "오빠, 애가 안 뛸 수 있나?"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 주택으로 이사 가야겠다." 대화가 끝난 후 오늘의 일기에 슬쩍 써넣었겠지.


일 년 후는 주택살이가 가시화가 되어있길!


2025년 1월이 되었고, 우리는 집을 짓게 되었다. 막연하게 주택으로의 이사를 꿈꾸던 우리가 일 년의 시간 동안 집을 지어서 살 결심을 했다. 전세 계약, 매매 계약이 아니라 무려 땅을 사고 설계 계약을 한 것이다. 남편은 일 년 전 일기장에 쓰인 글을 보고는 짧게 말했다. "신기하네. 추진력 좋네." 단독 주택에 살아본 경험도, 작은 오두막을 지어 본 경험조차 없는 무동력에 가까웠던 우리의 추진력에 건축사라는 첨단동력을 하나 더 장착한 느낌이다.


건축사를 통해 설계하고 시공사를 찾아 집을 짓는 정석(?)의 코스를 밟겠다고 마음먹은 10월, 바짝 긴장한 채 처음 전화통화를 했던 P건축사님은 우리 땅(이 되기 전이지만)의 지번과 생각하고 있는 건축 규모가 있는지 물어본 후 검토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수화기 건너의 목소리와 말투가 나긋해서 긴장이 풀리긴 했지만, 건축 규모와 예산을 물었을 때는 내심 "그 예산으로는 안 돼요."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아서 마냥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이후 다른 건축사 사무소와의 몇 건의 통화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없이 불만족스러워서 사실 P건축사님과의 통화도 덩달아 기대감을 접게 되었다. 아, 이래서야 마음이 맞는 건축사를 찾을 수 있을까.


이틀 후 P건축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불러드린 지번에 건축허가가 가능한지 군청과의 기초적인 협의 내용, 설계 절차, 목구조와 철근콘크리트, 경량철골구조 각각에 대한 평균 시공비 등이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쓰여있는 상담보고서를 함께 보내주셨다. 이어진 전화 상담을 통해 목조주택을 설계해 본 적은 없지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며 내가 생각한 경량목구조에서 나아가 중목구조와의 하이브리드 구조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농촌주택개량사업에 대한 사전조사와 빠듯한 예산에 대한 대화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내가 아직 여러 건축사와의 상담을 해보지 않아 결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만일 P건축사님과 설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더라고 한 번 연락을 달라는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위트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많은 건축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고, 몇 군데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땅이 팔려버렸다가 실은 팔리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며 급히 계약을 했고(아, 이거 중개사의 빅 픽쳐였나?), 대출을 조여매는 시기에 토지매입비용을 조달하느라 잠시 마음고생을 하며 파란만장한 한 달을 보냈다. 마음에 드는 두 곳의 건축사사무소를 후보에 올려둔 채 건축사 선정을 잠시 미뤄두고 있었을 때, P건축사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설계 계약은 했는지를 묻는 것이었지만, 그 와중에 털어놓은 나의 시공사 고민에 또 정성을 다해 답해주시는 모습에 남편과 한 번 방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잡았다.


사실 끝까지 고민이 많았다.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한 건축사 사무소는 세 곳. 그중 한 곳은 목조주택을 설계한 경험이 있었고 여러 번 협업을 한 시공사도 있었다. 사무실의 여러 건축사님 중 한 분이 예뻐서(정말!) 일단 마음에 들었고, 시원한 대화 방식도 좋았다. 하지만 이미 진행하고 있는 계약이 많은 듯했고, 집에 살게 될 우리 가족보다 예산과 절차에 더 집중한다는 인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에게 더 집중해 줄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또 다른 곳은 점심시간 산책에서 가끔 들른 소품샵의 건물을 설계하신 C건축사님이었고, 한 시간가량의 상담이 정말 즐거웠다. 이전에 설계한 건축물에 대한 애정이 많아 보였고, 예산관리에도 강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목조주택 설계 경험이 없고, 주로 협업하는 시공사 또한 철콘을 위주로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선택이 어려웠다.


P건축사님은 목조주택을 설계한 경험은 없지만 목조주택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마침 내가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던 목조주택 시공사를 추천하시기도 했고, 예산 때문에 지레 겁먹고 포기한 중목구조에 대한 관심도 있으셨다. 무엇보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대화가 잘 통했고, 인스타 게시물을 봤을 때도 결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의 끝까지 고민하는 내 옆에서 남편은 P건축사님에게 한 표를 던졌고, 드디어 두 달만에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계약일부터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듯 건축사님은 이미 우리 땅에 직접 가셔서 드론까지 날리며 분석을 하고 오셨다. 게다가 계약을 하기로 하고 도장을 찍으러 오기 며칠 전에도 '시기 상 설계 계약을 했겠지만 좋은 레퍼런스를 찾게 되었다'며 자료를 보내주셔서 마지막까지 아쉬웠던 C건축사님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하셨다. 우리 땅을 두고 대화를 나누셨다니 괜히 일석이조라는 마음이 들었다. 후에 C건축사님이 P건축사님을 칭찬하며 또 다른 레퍼런스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끝까지 고민했던 두 분이 친한 사이라니 나의 건축사 보는 눈(?)이 일관적이라는 자아성찰(이 아닌 칭찬)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설계 계약과 동시에 정말 우리 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설레기도 하고 아직도 뜬구름 잡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첫 설계안을 받아보면 조금 더 현실감각이 생기려나. 끄적여둔 다이어리를 펼쳐가며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건축사님은 웃으며 "로망이 많으시네요."라고 하셨다. 그 말에 '로망은 내가. 설계는 건축사가'라고 적어둔 메모를 보여드렸더니 맞는 말이라고 하셨지. 그저 로망이었던 우리 가족의 집 짓기가 건축사님의 손에서 어떻게 설계되어 세워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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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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