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측량, 우리 땅 돌려줘요

by 슬슬

설계 계약 후 2주 만에 현황측량이 이루어졌다. 건축사님의 단독 입회로 진행된 현황측량 결과, 우리 땅 20평 정도가 인접 도로, 논, 옆집에 골고루 물려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계측량이 아닌 현황측량이라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근 논의 경계에 최근 박아둔 경계 말뚝이 있었고 누군가 일부러 그 말뚝을 옮기지 않은 이상 그곳을 기점으로 측량을 했기 때문에 거의 정확한 결과라고 했다. 옆집이 침범하고 있는 3평 남짓은 땅을 살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도로와 논도 우리 땅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서 놀랐다.



북서쪽 논의 경우 우리 땅을 침범한 4.5평, 딱 그만큼을 주차장으로 쓰면 좋겠다 생각해서 추가 매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원래 우리 땅이라고 하니 오히려 잘됐다 싶긴 했는데, 혹시라도 논 주인과의 갈등이 생길까 봐 조금 불안해졌다. 도로에는 13평 정도를 내어주고 있었는데 일반 도로가 아니라 현황도로이고, 우리 땅 쪽으로 구거가 지나고 있어서 군청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옆집과 논의 땅은 토지 소유주에게 연락해 경계복원측량을 할 때 입회하도록 할 예정이다. 옆집의 경우 침범 토지 위에 이미 창고가 지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땅을 되찾겠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애초에 담장이 쳐져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알고 계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미 알고 계실지도…? 바로 옆집이기 때문에 경계 침범과 관련해서 적당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논의 경우에는 그 땅이 주차장으로 최적의 위치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걸 예상하더라도 찾아오려 한다. 우리 땅의 전 소유주 분에게 다른 건으로 연락드리며 논 소유주를 여쭈었는데 감사히도 알아봐 주시겠다고 했다. 연락처를 알게 되면 찬찬히 논의를 해야 하는데 좀 긴장된다. 집의 마당이나 건물의 일부가 아니라 논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군청과의 협의가 필요한 도로의 경계침범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건축사님의 존재가 빛을 발했다. 먼저 우리의 입장은 통행량이 많지는 않지만 이미 마을에서 오랫동안 농기계와 차량이 다니던 도로의 폭을 집을 짓기 위해 줄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진입로로 활용을 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 통행에 불편을 만들며 집을 짓는 건 마을 생활을 길게 보아도 좋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들은 건축사님은 그렇다면 오히려 협의가 편하다고 하시며 군청과의 협의를 진행했다. 협의 결과, 우리가 도로를 그대로 둔다면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만 우리 땅에 구거가 먼저 접해있고 그다음에 도로가 있기 때문에 도로 중심선에서 건축선 후퇴를 해야 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땅 열 평을 내어주고 1m 후퇴를 막은 걸 이득이라 말하자니 이상하긴 하다.


현황측량 하나에도 많은 이슈가 있다 보니 앞으로의 과정이 걱정이다. 그나마 우리가 남의 땅을 침범한 게 아니라 아쉬울 것은 없는 입장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건축사님과 긴밀하게 대화하며 모든 단계를 잘 거쳐가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계약할 때 건축사님이 집 지으며 10년 늙을 것 1년만 늙게 해 주겠다고 하셨으니 믿어봐야지. 이제 현황측량 결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설계에 돌입한다. 배우 신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차 설계 미팅, "2주 후에 뵙겠습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7화둘째 돼지 집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