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마음, 두 번째
아침에 눈을 떠 잠드는 순간까지 집 안의 수많은 물건을 본다. 침대에서 바로 보이는 서랍장 위의 알록달록 인형들, 식탁 위와 선반을 점령한 우편물과 인쇄물, 책과 필기도구, 환기를 위해 열어둔 옷장에는 입고 덮을 거리들이 가득하다. 눈이 쉴 틈 없이, 공가에는 여백 없이, 이제는 복잡하다는 자각도 없이 종일 물건들과 함께 산다. 바닥에 널브러진 리모컨을 가만히 바라본다. 리모컨이 차갑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뭘 봐? 내가 여기 있으면 네가 비켜 다녀야 하는 거 몰라?" 사람이 지내는 빈 곳에 물건이 자리하는 게 아니라, 물건들의 자리가 정해지고 나서야 사람이 다닐 곳이 정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선을 둘 데가 없고 마음이 어지럽다. 이 많은 물건님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며 수없이 읽은 책에서 얻은 교훈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남편과 빨래를 개다가 말했다. 이사를 가면 이거 다 버리고 예쁜 잠옷 계절별로 4벌 사서 전시해 두고 돌려 입을 거야. 또 언젠가 남편이 말했다. 새집 갈 때는 꼭 필요한 물건만 가져가자. 필요한 게 새로 생기면 있는 거 하나 정리하고 들이는 걸로 해. 설거지를 하다가 다짐한다. 이사 가서도 이렇게 싱크대에 아무거나 올려놓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목 늘어난 티셔츠와 고무줄 빠진 바지 대신 예쁜 잠옷을 사는 일,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는 일, 아무 데나 아무거나 늘어놓지 않는 일 모두 당장부터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요즘 우리가 그렇다. 새집에 가면 우리 삶이 좋은 방향으로 리셋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으로 살아간다. 지금의 삶이 마냥 팍팍하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이사를 하면, 새 집에 가면 갑자기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가볍고 예쁘게 살아야지. 단정하고 정돈된 집에서 지낼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반성. 지금부터 잘하면 되잖아. 물건을 비우고 정돈을 한 후에 간소하고 단정하게!
집이 바뀌면 삶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따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정서와 태도가 바뀐다. 종교적인 공간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게 된다. 잘 꾸며진 카페나 전시관에서 굽은 등을 꼿꼿이 펴고 걷게 되는 바로 그 마음이다. 건물의 깨진 창을 방치했을 때 인근 지역이 무질서해지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무질서한 공간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것이다. 공간이 주는 힘, 우린 그걸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공간을 물건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올해 일기장의 해빗트래커에는 '비우기'라는 항목을 써넣었다. 집을 짓기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비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새로운 물건을 들이지 않기로도 했다. 큰 물건에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서랍을 열어 오래된 펜 하나를 버리며 뿌듯해하는 나 자신이 좀 웃기다. 건축사님에게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짐이 많지 않다며 미니멀을 강조했는데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한 자리씩 물건이 차지하고 있다. 계획 상 완공까지 열 달. 그때까지 이 많은 물건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릴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