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일단 큰 숨을 한 번 내쉬고 시작해 볼까. 버럭이처럼 머리로 불을 뿜을 정도로 올랐던 혈압도 주말을 보내며 좀 가라앉았고, 과정이 어찌 되었든 선정이 되긴 했으니 이제는 이야기를 좀 풀어봐야겠다.
우리가 집을 짓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농촌주택개량사업이었다. 자금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 2억 5천만 원을 1.5%의 매우 저렴한 금리로 대출해 주는 사업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물론 준공이 완료된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한도가 얼마나 나올지 미리 알 수 없고, 선정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이 사업의 존재는 통장의 반대를 이겨내고 집을 짓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건축사님도 우리가 이 사업을 신청할 거라는 걸 들으시고는 사무실에서 매일 정수물을 갈며 기원을 하시겠다며 응원을 보태셨다.
대망의 2025 농촌주택개량사업 공고문이 떴다. 그 후의 지난한 일들을 모두 쓰자니 다시 화가 뻗칠 것 같아서 간단히 정리해 본다.
2월 25일 화요일, 00면 행정복지센터에 사전 문의 후 서류 접수 완료. 거주하고 있는 읍면지역에서 동일 읍면지역으로 이전하는 사업대상자임을 확인. 기존 1주택에 대한 서류는 필요 없다고 함. 최근 구매한 토지 건에 대해서는 재산세 부과가 아직 없었으므로 재산세 관련 서류는 필요 없고, 대신 토지 매매 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을 달라고 요구하여 메일로 추가 제출. 지침을 함께 확인하며 필요 서류를 확인받았고, 필요한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고 하여 요구대로 제출 완료함.
2월 27일 목요일, 00군청 주택과에 접수 확인 차 연락하였으나 담당자 부재. 메모 남김.
2월 28일 금요일, 00군청 주택과에서 회신이 왔으나 전달 오류로 '농촌'주택 담당이 아닌 '공동'주택 담당의 회신이 옴. 담당자에게 접수 확인 요구하였으나 담당자 부재. 또 메모 남김.
3월 4일 화요일, 00군청 주택과에서 담당자 부재이나, 대리인에게 접수는 잘 되었다며 확인 연락받음.
3월 6일 목요일 오후 5시 40분경, 00군청 주택과 농촌주택개량사업 담당자에게 전화가 옴. 접수 서류 중 일부가 누락되었기 때문에 우선순위이지만 후보로 처리하겠다고 함. 원래는 후보에게 연락도 주지 않지만 어린 자녀가 있다(우선순위 요건임)고 하여 바쁘지만 전화를 준거라며 마치 '수혜'를 주는 것처럼 통보함. 누락되었다는 서류는 접수처인 00면 행정복지센터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확인받은 서류였음. 접수처에서 확인받은 서류를 누락으로 처리함이 부당하므로 행정복지센터와 직접 소통하라고 이의 제기함. 추가 서류 제출해도 후보라는 말을 반복하여 계속해서 이의 제기하였고, 익일까지 추가 서류 제출하기로 함. 동점자 중 선정 기준에 대해 질문하였으나 내부 기준이 있고 알려줄 수 없다 함. 작년에 추첨을 했다고 들었고 동일한 방식으로 하냐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함. 통화 후 00면 행정복지센터 접수 담당자와 통화함. 접수 서류에는 문제가 없으며, 주택과 담당자의 일처리에 의문을 표하여 실무자끼리 직접 통화하시라 함. 추가 서류 담당자 메일로 제출 완료.
3월 7일 금요일 오전 10시 전, 추가 서류 접수 확인을 위해 두 차례 주택과 전화하였으나 담당자 부재. 메일은 10시 30분경 수신 확인 처리됨.
3월 7일 금요일 오전 11시 45분경, 선정 인원에 비해 우선순위 동점자가 많으므로 당일 오후 4시에 추첨에 참석하라고 통보받음. 전날 추첨은 없다고 말했으나 하루 만에 번복되었고, 무려 추첨 4시간 전에 통보함. 참석하지 않으면 공무원이 대리로 추첨에 참여할 것이고, 참석 여부 회신해 달라고 함.
3월 7일 금요일 오후 4시, 00군청 주택과에서 동그라미 그려진 탁구공을 뽑으면 선정, 숫자가 쓰인 탁구공을 뽑으면 순서대로 후보가 되는 방식으로 추첨 실시함.
공 뽑기라니. 알려줄 수 없다던 내부 기준은 어디로 가고 공 뽑기라니! 급조한 듯 조잡하게 만들어 둔 A4용지 상자 속에서 뽑은 탁구공에는 세상마상에 다행히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참석자들은 당일 통보로 모두 급히 온 듯한 느낌이었고 신기하게도 신청자 본인이 참석한 이들은 선정, 개인 사정으로 대리인을 보내거나 공무원을 대리인으로 세운 이들이 모두 후보가 되었다.
추첨이 끝나고 선정자 명단에 서명을 한 후에도 나를 포함한 선정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선정 내부 기준에 대한 의문(실은 내부 기준이 없었다), 매년 사업 실행 가능성이 적은 자를 선정하여 올해의 선정 인원이 매우 적게 배정되게 만든 데에 대한 질타,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잦은 담당자 부재와 그로 인해 미흡한 업무 처리 방식과 당일 통보에 대한 이의 제기 등. 선정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쁨보다 업무 처리에 대한 민원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아저씨는 군의원까지 만나고 왔단다.
하. 돌이켜보니 또 한숨이 나온다. 간단히 정리하려 했지만 적극행정은 개나 줘버린 듯한 업무처리 과정에 대해 부아가 치밀어 쉽지가 않다. 그래. 선정이 되긴 했지. 앞으로의 과정에서도 이런 업무 처리라면 몇 번 더 머리에 불을 뿜게 될 것인가. 그 와중에 나도 민원 응대자라는 직업의식이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며. 마지막 한숨 한 번 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