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마음, 세 번째
집을 지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동선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가족이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편안했으면 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눈을 꼭 감고 머릿속으로 평면도를 그려본다. 해리포터의 비밀스러운 도둑지도처럼 평면도를 펼쳐 두고 이곳저곳으로 발자국을 찍어 본다. 오늘은 유턴이라고는 없는 단조로운 내 발자국, 다음 날은 여기저기 분주한 아이의 발자국, 또 다음 날은 나른한 고양이의 발자국을 상상한다. 온 집안을 뽈뽈거리는 강아지의 발자국을, 주로 소파에 멈춰있는 남편의 발자국을 떠올린다. 그 모든 발자국에 고민이 묻지 않은 집이 되기를 바란다.
생활이 안정되면 일상, 루틴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생긴다. 반복되는 일상은 우리의 움직임, 바로 그 중요한 동선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동선의 흐름이 부드럽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공간이 필요하고, 동선을 잘 고려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더욱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선은 생활과 연결된다. 십 년의 결혼생활은 제법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다. 우리의 동선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성할 준비가 되었다는 마음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과 옷방을 차례로 거쳐 주방으로 나온다. 이제 자기 전까지 안방에는 들어갈 일이 없다. 안방은 그저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 공간으로 구성한다. 인간이 흩트려놓은 폭신한 이불뭉치는 낮 동안 고양이의 차지다. 그러니 안방 문은 개와 고양이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집에 오면 살림은 일시중지다. 아무래도 빨랫감을 들고 종종거리기는 힘들다. 손님이 떠난 후 밀린 살림에 치이지 않도록 세탁 공간을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해 언제든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빨래를 하고 다시 옷장에 넣는 일까지 연결되면 더 좋다. 아이와 남편의 옷도 관리는 내 몫이니 방마다 있을 필요가 있겠나. 집안의 모든 옷, 뿐만 아니라 담요와 이불도 모두 세탁실 겸 드레스룸에 모아두면 되겠다.
손님이 현관에 들어서면 가족과의 친밀도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달라진다. 거실과 주방, 마루가 있는 왼쪽은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손님이 머물 곳이다. 원가족이나 지기들이라면 아이방과 안방, 드레스룸과 가족화장실로 연결된 오른쪽까지도 괜찮다. 집은 사적인 공간 그 자체지만, 그 안에서도 공적인 영역과 깊은 사적 공간으로 구분해 두면 누구에게도 불편한 마음 없이 기꺼운 초대를 할 수 있다. 화장실, 특히 변기는 문을 열어두어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 두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안에 있는 사람도 편하지 않을까. 화캉스를 자주 떠나는 남편을 위한 배려(하고 싶지 않지만)기도 하다.
공간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온갖 멋진 인테리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것도 저것도 좋아 보여 한정된 면적 안에 많은 것을 덧붙이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일상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가족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선을 떠올리면 많은 것을 걷어낼 수 있다. 누군가는 안방은 널찍해야지, 현관이 왜 북쪽에 있냐, 방마다 붙박이장을 넣어야지 하고 말을 얹는다. 지금 짓고 있는 집은 나와 남편, 아이, 개와 고양이가 살 곳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다. 집을 짓는 일은 결국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는 일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