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설계미팅에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축사님이 준비하신 도면을 보며 우리는 건축사님이 추구하시는 방향을, 건축사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서로 파악하는 절차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쉬움이 컸지만, 길게는 몇 년씩, 수십 번을 고쳐가며 설계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 실망은 짧았다. 2차 설계안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일주일이 흐르고 금요일 낮, 2차 설계안이 도착했다.
얼핏 보기에 복잡한 형태에 아직 건축사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반영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우리가 재차 말씀드린 동선이나 집의 형태 등을 담으려 애쓰신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네 번째 안에서 한옥의 툇마루 느낌과 칸칸이 이어지는 방의 느낌을 보며 한옥의 구성 요소를 집에 가져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모양 때문이지만 직사각형 형태로 완전히 집을 펼쳐내지 못한 부분이 계속 아쉬웠다. 가족화장실과 세탁실, 드레스룸이 이어지고 이를 안방과 작은방과 연계시키는 것도 좀 더 다듬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집의 형태가 여러 버전으로 도착했다. 다양한 구성을 보니 마음에 드는 부분과 이런 건 별로다 하는 부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로망만 많고 구체적인 그림은 그리지 못하던 우리가 여러 평면을 보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각이 많은 벽이나 낮은 가벽 등으로 시야가 막히는 건 별로였고, 중목구조 집에서 구조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기둥이 너무 거실 중간을 차지하는 것도 거슬렸다. 기둥을 없앨 수는 없으니, 최대한 기둥을 잘 활용한 인테리어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평소 기둥이 있는 집을 거의 못 봤기에 눈에 익지 않아서 싫다고 느껴질 수 있으니 많은 자료를 보며 익숙해지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건축사님과 만날 시간이 없어서 도면을 보고 남편과 정리한 내용을 전화로 말씀드리게 되었다. 2차 설계안으로 제시해 주신 도면들에 대한 부연설명을 더 들었더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데크 옆으로 계단실이 자리해서 아늑한 서재 또는 리딩누크로 활용하는 방안이나, 현관에서 진입하면서 데크로 시선이 이어지는 건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다만, 집의 형태는 직사각형으로 펼쳐내길 원한다 말씀드렸더니 건축사님은 집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시도해 보겠다고 하셨다. 현관의 크기도 일반적 아파트의 좁은 구조가 아니라 팬트리와 화장실이 붙어 있는 마루 느낌의 넓은 공간으로 구성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계단 아래 공간을 활용하는 아이디어, 넓은 현관의 구성, 세탁실과 드레스룸이 마당으로 연결되는 동선 등에 대해 모아둔 레퍼런스 사진들을 참고해 주십사 건축사님께 보냈다. 우리는 그저 공간만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며 요청하지만, 건축사님은 건축법과 땅의 형태, 집을 앉혔을 때 그에 따라 달라지는 마당의 형태와 구조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요구는 한 개여도 그에 따라 손댈 것은 열 개, 스무 개일테니 얼마나 복잡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서 좋다'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