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와 명품 백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잘트, 굿즈로 읽는 아트] 델보 x 르네 마그리트

by 아보퓨레
델보 x 르네 마그리트, 브리앙 유머(Humor) 백(Bag). ‘이것은 델 보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 Delvaux)’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와 명품 백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 백(Bag)을 만드는 브랜드 델보(Delvaux)는 '벨기에의 에르메스'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있다. 델보에게 이 별명 아닌 별명은 멜랑꼴리한 감정으로 다가올 것 같다. 자타 공인 최고의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좋을 일이지만, 알고 보면 델보가 에르메스보다 8년이나 먼저 태어난 형이기에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미 삼아 견줘봤지만, 델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자부심만큼은 에르메스만큼이나 강한 것이 사실이다. 무려 벨기에 왕국 건국보다도 일 년 먼저 시작된 역사와, 1883년부터 벨기에 왕궁에 공식 납품업체로 선정되어 온 전통을 알고 나면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건 이 격조 높은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자마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미 다양한 명품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던 한국 명품시장이 델보의 등장에 들썩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La trahison des images(ceci n'est pas une pipe), 1929


2010년대 초중반 로고리스(Logoless) 제품이 명품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특정 브랜드가 '3 초 백'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기존의 시장이 너도나도 명품 로고 보여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당시 제품에 브랜드를 잘 드러내지 않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좋은 만듦새의 제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우리는 명품인데 딱히 자랑은 안 해요.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거든요." 이런 시크한 뉘앙스로 델보는 한국의 하이엔드 럭셔리 백 시장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어느 날 백화점에서 여인들이 가방을 열고 다니는 현상을 목도했던 적이 있었다. 글쎄, 명품 좀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너도나도 슬며시 가방을 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날이 갈수록 가방을 열고 다니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 주의 깊게 살펴보다 색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주인공이 바로 델보의 브리앙(brilliant) 백이었다. 가방이 오픈된 이유는 브리앙이 버클 여닫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방 잠그기가 귀찮아진 일부 여성들이 하나 둘 가방을 열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멋스러워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방을 열고 다녔고, 이내 트렌드가 된 것이다.


델보 x 르네 마그리트, 브리앙 백(Bag) ⓒ Delvaux


오랜 역사 탓에 다소 고리타분할 것 같은 델보는 의외로 기발한 창의가 넘쳐난다. 앙증맞고 귀여운 미니어처 백도 인상 깊지만,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 재단'과의 콜라보도 특별하다. 델보의 까만 브리앙 위 프랑스어 문장이 적혀있던 '유머(Humor)'라는 제품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유명한 작품 <이미지의 반역>을 오마주하여, ‘이것은 델 보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 Delvaux)’라는 문장을 고가의 가방 위에 새겨버렸다. 델보가 아닌 델보 가방이라니, 어떤 명품 브랜드가 이토록 과감한 위트를 발휘할 수 있을까.


가방 플립커버 내부에 구름 그림이 그려진 브리앙도 주목해 볼만하다. 마그리트는 가장 친숙한 소재를 의도적으로 어색한 곳에 배치하는 기법인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데페이즈망에 대한 델보의 멋진 해석 덕분에 명품 가방 속에 르네 마그리트의 하늘이 담기게 됐다. 더욱 재밌는 건 이 가방은 평소에 일부러 열고 다니는 가방이 아니던가. 이쯤 되니 르네 마그리트 재단과 델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콜라보 한 번 기가 막히게 잘하는군요!


르네 마그리트, <골콩드> Golconda, 1953


일상의 것들로 일반을 뒤틀다


르네 마그리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중절모 신사, 사과, 구름, 그리고 깔끔한 그래픽 같은 그림들. 수많은 뮤지션과 팝아트 작가들이 오마주하며 현시대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이지만, 작품적 유명세에 비해 르네 마그리트라는 인물은 아직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든다. 사실 르네 마그리트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자라고 불리고 싶어 했을 만큼 철학적 사고가 깊었으며,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작품에 고스란히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르네 마그리트, <심금> La corde sensible, 1960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양복 재단사, 어머니는 모자 상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슈트를 쫙 빼입은 중절모 신사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는 미술계의 엘리트 코스인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벽지회사에서도 그래픽 아트를 배우는 등 실력을 탄탄하게 갖춰나간다.


역사적으로 천재들은 기본기를 갖추고 나면 이후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곤 한다. 피카소는 입체주의를 발전시켰고, 뒤샹은 개념미술을 고안해 낸 것처럼. 마그리트는 본인만의 독특한 초현실주의를 쌓아 올린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같이 이성과 논리가 배제된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을 추구한 정통 초현실주의와는 달리, 마그리트는 일상적인 사물, 철학적 제시 등 본인만의 고유한 툴을 활용해 현실을 넘어서고자 한다.


일상적인 소재들을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마그르트는 우리를 어떻게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일까. 그가 좋아했던 철학자인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을 활용해 그의 생각을 읽어보자. 일상의 사물이 일반적인 환경에 있는 모습은 '정(正)'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일반적 사물이 이질적 환경에 배치해 감상자에게 '반(反)'을 제시한다. 이 순간부터 관람객은 일반적인 인식과 그려진 것에 대한 본질에 대한 많은 고민과 사유를 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감상자를 '합(合)'의 경지에 도달케 한다. 파이프가 아니라는 문장이 적힌 파이프 그림을 보고, 그것이 파이프인지 파이프가 아닌지, 처음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왜 파이프라고 인지했는지를 고민하는 사이, 기존의 고정관념은 산산조각 난다. 마침내 고정관념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던진 관람자는 마그리트의 시적 허용과 신비함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게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잘못된 거울> The false mirror, 1928


그는 미술에서의 시적 허용을 즐겼다. 하늘에서 사람 비를 내리기도 하고, 새의 알을 보고 성장을 마친 새를 그리기도 한다. 작품 판매 수입이 증가해 더 이상 회사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그는 매우 기뻐하며 조용히 작업실로 들어가 본인의 괴짜력 향상에 더욱 정진했다고 한다. 이쯤 되니 델보가 고가의 명품 백에 '이것은 백이 아니다'라고 적어내려간 그 도전이 더 이상 단순한 콜라보로 보이지 않는다. 델보는 200년 전통과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거장 르네 마그리트를 담아냈고, 마그리트는 감사의 표시로 그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처럼 델보의 가방 안쪽에 본인이 즐겨 날아다녔던 하늘과 구름을 선물한 것이 아닐까. 벨기에의 자존심 델보가 벨기에의 자부심을 계승한 예술작품 한 점을 감상한 것만 같다.


<투시> (Clairvoyance, 1936) 작품을 그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게 매달릴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마합니까?'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




*이미지 출처

https://wwd.com/fashion-news/fashion-scoops/delvaux-and-barneys-celebrate-ren-magritte-7737024/

https://kr.delvaux.com/ko/collections/magritte-collection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ake5_now&logNo=13017610874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309321&memberNo=3060953

https://www.news2day.co.kr/72309

https://www.lux-mag.com/rene-magritte-surre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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