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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Aug 05. 2024

날개 없는 천사, 조산사

우릴 혼자 두지 말아줘요


출산을 약 두 달 앞두고 남편과 출산준비교실을 찾은 날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하늘은 가을을 반기듯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사방에선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수업이 열리는 곳은 우연히도 십 년 전 남편을 처음 만난 기숙사 근처였다. 시내로 이사를 가면서 한동안 찾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그것도 아이가 생겨 부른 배로 돌아오다니! 하며 괜스레 감상에 젖어 근처를 돌아보는데 남편은 차에서 짐을 내리느라 진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이불 두 개, 쿠션 두 개 그리고 먹을 거랑 마실 거…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온갖 짐을 이고 지고 가는 남편 모습은 흡사 우리가 캠핑이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목적지에 다가서자 우리말고도 다른 커플들이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남편들은 수업준비물을 낑낑대며 들고있었고 그 옆에서 따라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뒤뚱뒤뚱 펭귄처럼 걷고 있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틀 동안 열린 수업은 사실 한 시간도 의자에 똑바로 앉아있기 힘든 만삭의 임산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닥에서 진행되었고 이런 이유로 준비물엔 이불과 베개가 있었던 것이었다. 교실 곳곳에 매트와 이불을 깔아놓고 동그랗게 앉아서 진행된 수업은 마치 어린이집 같았다. 수업을 주관한 조산사는 이십여 년 동안 분만병원에서 일을 한 경험이 많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틀 동안 출산의 신호가 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병원은 언제 가고 무엇을 가져가는지 그리고 진통이 오면 숨은 어떻게 쉬는지 같은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수업을 듣는 부부들은 모두 첫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것저것 조심스럽게 묻는 우리에게 그녀는 관록이 깃든 차분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분만의 주인공은 여러분이에요. 분만 시 원하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또 원하는 자세가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청하세요. 우리는 당신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니까요.”




아기는 뱃속에서 시계를 볼 수 없기에 분만실엔 낮밤이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분만실은 교대 근무하는 조산사들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이틀 동안 지루하게 그리고 또 초조하게 진통을 기다리며 나는 여러 조산사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중엔 직업교육을 갓 마쳐서 모든 질문에 열과 성을 다해 대답해 주는 어린 조산사가 있나 하면, 지금까지 아기를 몇백 명은 받아 본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턱턱 던지는 조산사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진통이 시작되고 힘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조산사가 얼굴을 비췄다. 검은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낀 그녀는 상냥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양다리 사이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그게 이상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지금 당장 무통을 놔주지 않으면 내가 아는 모든 독일어로 분만실 안 사람들을 욕하기 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몇 시간 전 무통주사를 놔달라 말을 했지만 내게 돌아온 건 한 뭉텅이의 서류들이었다. 그 안에는 무통주사의 성분, 부작용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서류를 건네준 금발의 나이가 지긋한 조산사는 본인이 모두 꼼꼼히 읽고 서명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냥 서명만 해도 될 일이었지만, 또 내 성격이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서류를 읽기를 포기하고 기절하다시피 다섯 시간가량 숨만 간신히 쉬며 진통을 견뎌냈다. 하지만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무통주사든 제왕절개든 고통을 덜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해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순간에 도달했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분노와 달리 내 목에선 모깃소리만큼 작은 신음소리만 나왔다. 남편이 겨우 내가 하는 소리를 이해해 조산사에게 전달해 주었다.  


     “아내가 무통주사를 원해요.”

     “산모님 좋아요. 하지만 우선 내진을 한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곧 반색을 하며 자궁문이 이미 9cm나 열렸다고 했다. 그러고는 정 원한다면 주사를 놓아줄 수는 있지만 오히려 분만과정을 더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무통은 천국이라던데 서류 뭉탱이 때문에 맞지를 못한다니, 독일사람들은 아마 죽어서 진짜로 천국에 가도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이내 힘을 줘야 할 신호가 오기 시작했고 결국 생으로 진통을 느끼며 힘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아기를 만나는 건가 싶어 힘을 다해 아기를 밀어내는데도 아기는 통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결국 나와 남편 그리고 담당 조산사는 한 팀이 되어 위를 보고 누웠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서서 한 다리를 들었다 또다시 목욕탕 의자 같은 조그만 분만의자에도 앉아보고 하며 온갖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진행이 더딜 때면 조산사는 내게 시도하고 싶은 자세가 있는지 물었고 바로바로 지체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지만 아기는 여전히 마음처럼 속시원히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조산사에게 물었다.


     “제가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 거죠?”


그러자 조산사는 아주 상냥하고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힘든데도 아기를 위해 열심히 호흡하고 있잖아요. 엄마의 호흡을 아기도 느끼고 있어요. 아기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거예요!”


그녀의 상냥한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을 주었다. 그로부터 삼십 분 후 아기는 울음소리와 함께 건강하게 태어났다. 새벽 두 시 조금 전이었다. 이어 의사가 후처치를 하고 그동안 먹지 못한 밥을 먹고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을 다녀오니 새벽 네 시경이었다. 병실을 떠나 있던 약 10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터라,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때 병실에 인사를 건네러 온 조산사는 바로 이어 다른 산모의 출산을 도우러 가야 한다고 말하며 다정하게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빌어주고는 홀연히 떠났다. 아무리 그녀가 출산을 하는 건 아니라지만, 나에겐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 드라마틱한 일이 그녀에겐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 등뒤에 어딘가 날개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양수가 터져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아이와 함께 집으로 퇴원할 때까지는 5박 6일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출산 후 입원실로 옮겨지고 난 후에는 새로운 조산사들이 다시 교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분만병원을 정하고 병원 대기실에 아이들 사진이 여럿 걸려있었다. 대략 열명 중 삼분의 일은 흑백사진이었고 나머지는 선명한 컬러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사진 밑에는 ‘조산사 아무개’라는 이름이 하나씩 걸려있었다. 조산사들의 어릴 적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장담하건대 대기실에 걸려있던 사진의 주인공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수시로 모유수유 때문에 조산사들을 호출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도움을 청하면, 병원의 모든 조산사들은 모두 매번 같은 말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한 번도 나를 나무라거나 분유를 권하는 조산사들은 없었다. 심지어 아기의 황달수치가 높아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계속 자주 아기에게 젖을 물리라고만 했지 내가 죄책감을 가질만한 이야기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았다. 입원병동이 가장 바쁜 이른 아침에도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도 그녀들은 도움을 청하는 나를 혼자두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두 번 젖을 물릴 때마다, 또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아기에게 젖무는 방법을 익혀갔다. 느리고 서툴러도 아기와 나는 조산사들의 도움으로 호흡을 맞추어갈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출산은 사랑하는 아기를 만나는 가장 소중하고 내밀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이 가장 절박하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조산사들은 단순히 직업적 의무로 나를 돌봐준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나를 지원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퇴원날이 다가왔다.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러운 아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천사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미 한차례 울음을 터뜨린 후였다. 아기를 침대에 눕힌 후 우리는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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