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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Jul 22. 2024

그렇게 엄마가 된다

당연한 건 없어요

출산 전 담당 조산사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그녀의 사무실이 있는 마을 초입에는 붉은 장미꽃이 만개해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몇 가지 질문을 마친 그녀는 자세를 바꿔 앉으며 모유수유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남편을 한 번 쳐다보았다. 배는 점점 불러와 이제 제법 임산부 티가 났지만 아직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은커녕 엄마가 된 스스로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솔직히는 별 생각도 없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 준 영상들 덕에 모유수유가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 일인지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에선 출산 준비물에 분유제조기, 젖병소독기 등 분유 수유를 위함 용품들이 필수라고 들었다. 출산 전 꾸며야 하는 ‘맘마존’은 그것들을 모아놓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당연히 의례 다 그렇게 하나보다 싶었고 별난 예외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 자신이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네. 할 수만 있다면요.”

그러나 내 대답을 들은 조산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왔다.


     “왜 할 수 없죠?”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 대답은 그녀가 지금껏 예의상 짓던 웃음마저도 앗아간 듯했다. 그녀는 마치 ‘누가 모유수유하는 것을 방해하나요?’라고 묻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나는 변명하듯 모유수유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내가 젖양이 얼마나 많은지는 아기를 낳아봐야 아는 거 아니겠냐며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를 설득하진 못한 듯 그녀는 다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아이에 말을 하듯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내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 후 침대에 눕혀져 다시 입원실로 옮겨졌을 때 시곗바늘은 새벽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9시간이 걸린 출산과정에 다리는 풀려버렸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지 오래였다. 다른 무엇보다 잠이 간절했다. 아홉 달이 걸린 임신이란 임무를 방금 막 출산으로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는 좀 푹 쉬고 싶었다. 그러나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기는 바퀴 달린 침대에 넣어져 입원실 안으로 들어왔다. 병원에는 신생아실이 없었다. 간호사는 능숙한 손길로 아기를 내 가슴팍 위로 옮겨놓고는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는 말을 하곤 사라졌다. 예상은 했어도 이렇게 바로 신생아와 단 둘이 남겨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만 같은 아기를 들어 침대에 넣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새벽이라 남편은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이러한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아기는 어쩔 줄 모르는 엄마 품에서 색색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을 잤다.


그렇게 첫날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후 아침이 찾아왔다. 엄마가 된 지 일곱 시간 째였다. 밤새 잠을 설친 터라 몸은 피곤했고 아직 샤워도 하지 못해 너무 찝찝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인정사정없었다. 그녀들은 병실로 아무런 예고 없이 들어와 수시로 나의 가슴팍에 불쑥불쑥 손을 집어넣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분만할 때까지만 해도 내 몸을 만질 때마다 동의를 구하던 사람들이 애를 낳고 나니 한순간에 돌변한 것이다. 출산을 할 때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긴 했어도 그때는 아직은 사람으로 대우를 받았다. 내진을 할 때도 산파들은 ‘불편할 겁니다 ‘라며 내 불안감을 낮춰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에 나온 이후부터 엄마가 된 내 젖꼭지는 아이의 밥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짐승의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듯 나도 젖을 물려야 했다.


몸도 그에 응하듯 출산 직후 노란 초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저절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출산 후 아이를 가슴팍에 올려놓은 산파는 지금 바로 젖을 물려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아주 당연하게도 나는 아직 한 번도 젖을 물려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줄 모르며 산파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심지어는 미소를 띤 상태로) 내 젖꼭지를 비틀었다. 그러자 끈적하고 노란 젤리 같은 것이 아주 조금 나오기 시작했고 뿌듯한 얼굴로 산파는 양수냄새가 폴폴 나는 아기 입에 초유를 갖다 대었다. 비틀린 젖꼭지는 잠깐이지만 정말 아파서 나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를뻔했지만 안간힘을 주며 참았다. 왠지 엄마라면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수가 파열된 후에도 여유롭게 이틀을 뱃속에서 버티던 아이는 세상에 나온 후에도 느긋하게 잠만 자려했다. 퇴원 전 아기의 황달수치가 높아지자 간호사들은 다시 나에게 모유 수축을 하기를 명했다. 내가 젖양이 충분한지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위로는 가슴팍을 풀어헤치고 아랫도리엔 산모용 생리대를 착용한 채 노랗고 큰 기계로 모유를 수축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서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아기는 점점 더 먹기보단 잠만 자려했고 몇 시간 사이에 눈에 띄게 축 쳐진 거 같기도 했다. 수축기계는 규칙적으로 ‘슈욱 슈욱’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서 젖을 뽑아냈고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젖이 많이 나오기만을 바랐다.  




다음날 아기의 황달수치가 기준치 아래로 내려갔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한 달간 내 모유수유 도전기는 처참했다. 출산 후 보름 후에는 무던하게 지나간 줄 알았던 젖몸살이 왔던 그날 새벽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탱탱 불은 가슴은 옷깃만 스쳐도 마치 칼에 베이는 듯 아팠고 출산 후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로 수시로 젖을 물리느라 어깨와 팔은 근육통으로 떨려왔다. 그래도 새벽에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엉엉 울며 수유를 하면서도 남편에겐 내일 당장 분유를 사러 갈 거라며 울부짖던 날을 말이다.


물범과 동물의 새끼는 전적으로 어미에게 양분을 의존해 생후 18일이면 젖을 뗀다고 한다. 인간에 비해 무척 짧은 기간이지만 젖에는 60퍼센트 지방이 함류되어 있어 새끼가 젖을 뗄 무렵 어미는 몸무게가 40퍼센트 감소한다. 그동안 새끼는 크기가 세배 커져 둥그런 지방덩어리 상태로 언덕을 굴러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새끼가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부주의한 어미 때문에 영양을 적절히 공급받지 못한 새끼의 50퍼센트는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만다. 또한 개코원숭이의 어미도 새끼를 낳은 후에도 열매나 씨앗을 찾아 한 손에는 새끼를 안고 남은 세 다리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때 초산인 초보 엄마들은 아이를 똑바로 안지 못해 심지어는 거꾸로 안은 채로 먼 길을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면 새끼들은 탈수상태에 빠지고 몇몇은 며칠 안으로 죽게 된다. 관찰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새끼가 왜 힘들어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한다고 했다. 이처럼 양육의 본능 자체는 타고났을지 모르지만 어미로서의 행동은 천천히 발동되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초보엄마인 나에게 모유수유는 절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모유수유는 잠을 ‘참고’ 아픔을 ‘견디’ 하루에도 몇 번씩 ‘연습’하는 것이었다. 마치 부상당한 채 다시 링 위로 올라가는 권투선수처럼 그렇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 보니 거짓말처럼 점차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게 익숙해져 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나에게 한 번이라도 강요를 했다면, 나는 얼마가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모유수유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담당 조산사 덕분이었다. 모유수유는 엄마 혼자서만은 해낼 수 없다. 초산이라면 더더욱 낯설고 힘든 일이다. 남편은 출산 후 한 달간 육아휴직을 썼다. 온갖 가사를 도맡아 하고 나에게 삼시세끼 밥을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수유 전엔 따듯한 핫팩을 수유 후엔 차가운 냉팩을 가져다주는 것도 남편의 일이었다. 조산사는 매일 집으로 찾아와 아이가 젖을 잘 무는지 몸무게는 잘 느는지 상시로 체크를 해주었다. 그녀는 젖몸살에 괴로워하는 나를 위해 내 가슴에 운동선수들처럼 테이핑을 해주고 유두보호기를 빌려주었다. 전문가들이 도와주고 사랑하는 이가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기쁨을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도움과 사랑이 없으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이 당연한 행위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된다. 엄마니까,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감내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모유수유는 전적으로 엄마가 결정할 일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 후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는 정말 눈감고도 젖을 물리는 경지에 도달했다. 종종 남편에게 젖몸살이 왔던 밤을 소재삼아 영웅담을 늘어놓기도 하고 여행을 가면 덕분에 짐이 훨씬 줄지 않았냐며 장난반 진담반 뽐내기도 한다. 그러면 남편은 이미 백번은 들어 지겨울지언정 꾹 참고 백 한 번째 찬사를 날려준다.

     "Du hast total recht! Danke, du Wunderboobie!(네 말이 맞아! 고마워 기적의 가슴아!)







* [암컷들] 루시 쿡, 웅진지식하우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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