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가 터졌다. 초산이었지만 이것이 양수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잠시 고민하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단잠에서 깨 짜증이 난 남편은 평소보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한쪽 눈을 겨우 뜨고 쳐다보았다. 아니면 어떤 예감을 받았건 것은 아닐까,우리가 방해받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을. 그날 우리는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오전에는 마지막 산부인과 진료가 있었다. 예정일이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온 터라 산부인과 의사는 '이제 애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요. 다음 주에도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면 연락해요.'라고 했다. 그녀의 말투는 친절하면서도 여전히 사무적이었지만 어딘가 마음을 놓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리긴 했어도 아이의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고 내 몸상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리는 그날 오후 영화관에 가기도 했다.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해 하는 남편을 설득한 것은 나였다. 왠지 그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팝콘을 사서 시시덕 거리며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는 영화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잠에 들었다.
“자기야, 나 양수가 터진 것 같아.”
”…? “
남편은 마치 오류가 난 기계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익숙한 반응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도 남편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불을 들추어 그에게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핸드폰을 찾았다.
“병원에 연락부터 해야겠지? 진통은 있어?”
“배가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한데, 아직 진통 같지는 않아… 그래도 병원에 연락은 해야 될 것 같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딘가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기에 그제야 모든 일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난 후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초조하게 이것저것 묻는 남편과 대비되게 그녀는겨우 하품을 누르는듯한 목소리로,진통이 없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불안하다면 언제든 병원으로 오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권태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하긴, 그녀에겐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리라.
두 시간 후 우리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양수가 터졌으니 금방 아기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평소에도 태동이 크지 않던 아기는 양수가 줄줄 새는 자궁 안에서도 쉬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통 없이 24시간이 흐르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조산사들은 태평하게 “Alles gut.(괜찮아)”만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바로 유도분만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진통을 오게 해 준다는 천연 오일로 배를 마사지하기도 했고, 8층짜리 병원 계단을 매시간마다 내려가게 했다. 감기에 걸리면 약대신 차를 마시는 독일사람들 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조해하는 나에 비해 그들은 너무나 태연했다. 심지어는 남편이 내 젖꼭지를 자극하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온다는 말을 농담조로 하기도 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병원 내 가장 나이 많은 조산사였다. 그러나 별소식 없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에도 영 진통은 오지 않았다. 태평하던 그들 사이에도 동요가 일기 시작하더니 48시간이 지나도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본격적으로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양수가 터진 후 이틀째 내 손에는 반알 짜리 유도분만 약이 쥐어졌다.
아기는 내가 다시스물네 시간 동안 네 번의 알약을 삼키고 나서야 밖으로 나올 기미를 보였다. 일단 진통이 시작되자, 급격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것은 아프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모자랐다. 내 몸은 하나의 화산이었고 진통은 지진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내 몸은 깨어지고 터지고 폭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만실로 옮겨지자마자 주저앉아버린 채 그대로 침대까지 세발자국을 내딛지 못해 바닥에서 몇 시간을 일어서지 못했다. 생각보다 큰 고통의 강도에 얼핏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서웠다.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나는 부축을 받으며 침대 위에 누을 수 있었다. 모두가 얘기하듯 진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돌아가곤 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호흡과 함께 그 파도에 몸을 맡겼다.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있었다. 내가 힘내지 않으면 아이가 힘들 것이다.그렇게 물과 포도당만으로 일곱 시간 진통을 견뎠다. 그러다 점차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이 바로 힘을 줘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조산사는 내진을 해보더니 이미 자궁문이 9cm가 열렸다고 말했다.힘주기를 시작하자 내 몸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가 분만실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생명이 이어지는 동안 수억만 번은 반복되었을 그 과정을 지나는 동안 나는 짐승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왔음을 그 극적인 순간에 깨달았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나는 큰 소리로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런 소리를, 그런 크기로 내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한 강력한 울림이 분만실을 매웠다. 그리고 마침내 내 비명의 끝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작되었다.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열 달 동안 내 자궁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길을 걷던 작은 생명은, 마침내 세상에 나와 내 가슴 위로 올려졌다. 아기에게선 내내 진한 양수 냄새가 났다. 그 사실이 아기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어제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내 가슴 위로 올려진 이 아이와 나는 오늘부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고 아기에게 첫인사를 건네는 나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기쁨으로 가득 차있었다.
“안녕. 나의 아가야”
하지만 감동의 순간도 잠시, 조산사는 이제 태반을 밀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 고생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듣자 순간적으로 입에서 독일어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Ach du Scheiße!(이런 젠장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의사와 조산사는 참지 못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외국인인 내 입에서 독일어 욕이 그렇게 찰지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남편도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숭고하고 감동적인 분위기는 깨어지고 분만실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자 조산사는 웃음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로 아기에게 나를 대신해 변명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