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은 온통 동네가 시끄러웠다. 강아지는 눈 위로 뛰는데 바쁘고 꼬리를 흔들며 난리를 피웠고 아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의 아름다움에 취해 추위도 잊고 눈 위에서 뛰어놀았다.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길이 얼어 미끄러울 것을 걱정하여 빗자루와 서까래를 들고 집 앞 눈을 치우고 있었다. 밤이 어두워져도 강아지와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한바탕 눈 잔치를 치렀다.
옛 시절에는 집에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고 보일러의 물을 따뜻하게 하는 연료가 연탄이었다. 연탄불은 늘 집안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따뜻함 뒤에는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한 정성이 숨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늘 뒤에 있었다. 방이 냉골이 되지 않도록 밤 낮 구분 없이 연탄불을 신경 써야 했다. 연탄불이 다 탄 연탄은 각각의 집 앞에 내놓았다. 눈 오는 날은 다 탄 연탄이 정말 소중하다. 미끄러운 길에 부서진 연탄재를 뿌리고 아이들에게는 눈사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로 썼다. 연탄을 굴리면 눈들이 연탄에 붙어 금방 눈사람 몸과 머리가 만들어졌다.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시합도 하고 너무 크게 만들어서 머리를 올리기조차 어렵기도 했다. 눈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고 눈 감고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성이었다. 눈 온 다음날 눈사람이 녹는 것을 보면서 너무 아쉽고 슬퍼했던 기억까지 눈사람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 감성을 선사해준 선물이었다.
지금은 눈이 와도 밖이 조용하다.
과거의 어린 시절처럼 밖에 나와 뛰어놀던 아이들은 없고 그냥 주차장에 쌓이는 눈만 있을 뿐이다. 방에서 휴대폰을 보는 아이들만 있을 뿐 눈 속에 빠져 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눈사람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도 서서히 잊혀 간다. 어머님도 이 세상을 잊고 하늘나라도 가셨다.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눈사람의 낭만보다 눈 오는 날 때문에 길이 미끄러울까 봐 걱정부터 한다.
눈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애정을 받고 몸과 머리가 만들어지고 눈과 코가 만들어지면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정성이 담겨야 눈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눈사람이 만들어지지만 영원히 자신의 몸을 유지하지 못한다. 낮이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시간이 눈사람을 조금씩 사라지게 한다.
태어날 때의 정성은 사라지고 조금씩 못난이가 되어간다. 처음의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상과 시간이 흘러가며 이별을 해 나간다. 눈사람은 이별이란 것에 익숙하다. 늘 그래 왔다.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알기에 슬퍼하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인다. 정성이 듬뿍 담긴 탄생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시간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별을 받아들인다. 자꾸 몸의 구석구석이 사라지고 이 세상에 눈사람의 흔적은 없어진다.
과연 눈사람만이 그럴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귀중하고 소중함을 가족들에게 듬뿍 받는다. 나이가 들어가며 부모님이 세상과 이별하고 본인이 부모가 되며 사랑은 온통 자식으로 쏠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신체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서서히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눈사람이 세상과 이별하듯 인간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이별을 준비한다. 눈사람이 준 우리의 추억만 남고 우리도 눈사람처럼 조용히 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하얀 눈사람에 시간이 묻을수록 작아지듯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고 순수함은 사라지고 작아진다. 웃는 미소도 주름살로 남겨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시간이 만들어가는 흐름을 거부할 수 없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지금 이 순간 하나씩 자신의 향기를 만들어간다. 자신의 향기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살다 사라지는 거라는 것.
이것이 인생이고 삶인듯하다.
눈사람처럼 인간도 유한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유한한 삶을 기분 좋게 살다가 떠나는 준비를 하자.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가족과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면 더욱 행복하게 살다 사라지는 삶이 될 듯하다.
오늘은 김유미 크리에터가 눈사람 그림을 선물해 줘서 눈사람 속의 인생을 배울 수가 있었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