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밥상 위에 반찬이 아무리 풍성해도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허기와는 별개로, 마음이 지쳐 입맛조차 사라지는 날이다. 무언가를 먹고는 싶지만, 무엇도 입에 잘 붙지 않는 그런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한 접시가 있다. 매콤한 양념이 진하게 스며든 제육볶음이다. 혀끝을 살짝 자극하는 매운맛은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듯하고, 짭조름하고 은근한 단맛은 자연스럽게 밥 한 숟가락을 부른다.
그 한 입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단순하고 빛바랜 일상 위에 화려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한 생기를 더한다. 고기와 양념이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 무채색 같았던 하루에 색감이 번진다. 그렇게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나면, 식욕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눌려 있던 의지나 생기도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누군가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가 된다.
삶도 그렇다. 때로는 이런 매콤한 자극 하나가 필요하다. 흔들림을 깨우고, 다시 나아가게 하는 작고도 단단한 힘이다. 작지만 깊은 한 입의 온기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온기는 비단 입맛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뎌졌던 감각을 일깨우고, 굳어 있던 생각의 틀을 흔드는 작은 울림이 된다.
매운맛이 혀끝을 자극하듯, 이 울림은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시야를 조금씩 넓혀준다. 때론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유연해지고, 더 깊어지며,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맛이 생각을 흔들고, 한 접시의 음식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고도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