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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5. 2021

빵을 먹는 아침은
하루를 숨쉬게 한다


빵을 먹기로 했다. 늦은 저녁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말한다.

“낼 아침은 빵 먹을까?”

잘 먹기로는 우리 집 1등이지만 무엇을 먹자고 먼저 얘기하지 않는 그의 한마디는 강렬했다. 우리 집에서 빵은 주말의 상징이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밥 대신 빵을 종종 올린다. 모든 제약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이날만큼은 부담 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 프렌치토스트로 해줘요.”

막내가 어느 틈에 끼어든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그것이 먹고 싶었나 보다.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가능한 저 칼로리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빵도 통밀이나 딱딱한 식사 빵 종류의 것을 사려고 해 보지만 절반의 성공이다. 

“어려울 것 같은데, 그냥 구워서 먹으면 안 될까?”

빵이라는 얘기에 귀가 쫑긋해서 기분 좋았던 아이 입이 살짝 나온 게 불만인 모양이다.     


빵은 우리 가족에게 빼놓을 수 없는 행복 아이템이다. 어디를 가든 현지의 빵집을 꼭 들른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빵지 순례라고 불리는 맛있고 독특한 빵집을 찾아다녔다. 갓 구운 빵이 진열되고 그 향은 코끝을 간질여 기분 좋게 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사고 싶어 지는 욕망이 꿈틀대는 순간이다. 은은한 버터향에 바삭한 크루아상과 초콜릿이 잔뜩 들어간 머핀, 국산 팥임을 강조하는 팥빵 등 둘러보고 있는 순간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그곳의 빵을 봉지 가득 들고 온다. 비록 하루 이틀 안에 사라질 것이지만 잠시 여행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머물다 간다.     


금요일 아침의 빵은 어제와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선이었다. 매일 먹는 밥과 국 김치, 멸치, 다른 반찬들 사이를 오가는 반복적인 수저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 손을 들어 원하는 것을 빵 위에 올리거나 그냥 빵만 먹어도 괜찮다. 과일과 야채가 적절히 어울리는 샐러드가 먹고 싶다면 포크를 들으면 된다. 아이들 역시 빵을 먹을 때는 얼굴에 꽃이 핀다.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없다. 

  

아주 오래전 유럽 여행 때였다. 아침을 먹는데 중년의 신사가 크루아상 하나와 계란 프라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신문을 보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밖에는 겨울의 끝을 아쉬워하는 눈 내리는 2월 말이었는데 단출한 그 풍경에선 여유가 흘러나왔다. 나도 가끔 그런 시간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나 혼자일 때 가능한 일이다.   

   

헬렌 니어링은 가능한 소박한 밥상을 강조한다.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기와 다른 해야 할 일이 뒤로 밀려나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언제나 내 시계는 그와는 반대다. 아이의 바람대로 토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요즘은 매일이 적응을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이다. 아침이라도 기분 좋은 시간이 되도록 해주고 싶다. 무뚝뚝한 남편에게도 특별할 것 없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의 아침이 작은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계란물과 우유에 꿀을 한 스푼 넣고 잘 저은 다음 버터 한 조각을 넣어 빵을 구웠다. 마지막에는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린다. 내가 좋아하는 샐러드도 만들었다. 상추와 치커리, 토마토와 사과, 파프리카, 비트가 접시에 모였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까망베르 치즈도 오랜만에 불러들였다.      


방에 있던 큰아이가 먼저 달려와 앉는다.

“엄마 맛있겠다. 오늘 빵이에요.”

 아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고민 없는 생기 가득한,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예쁜 미소다. 엄마의 일이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막내는 언제나 그러하듯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오로지 빵에만 집중한다. 아침밥으로 빵을 먹는다는 건 꽉 짜인 하루를 숨통 트이게 해주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다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남편 역시 사무실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밀려오는 일에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여유도 없다. 자동적으로 몸은 컴퓨터 앞에서 모니터를 친구 삼아 지내다 보면 낮은 밤으로 향한다.   

   

남편에게 물었다. 

“왜 빵 먹자고 했어요?”

“응 밥이 지겨워서.”

밥에 마음을 두기가 어려워졌다는 신호다. 뭔가를 하다가 지루해지고 싫어지는 순간에는 변화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지 말아야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걸 요즘 배우는 중이다. 아침밥을 먹는 일은 그중에서  쉽게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다행이다. 빵으로 시작한 아침이 허투루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보려 한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준 내게 잘했다고 토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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