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가 좋을 것 같아요
<기브 앤 테이크> 모임 다음 날,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그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 따로 한 번 볼래요?” 이번 연락도 의외였다. 왜냐하면 전날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정말 큰맘을 먹고 평일 모임에 참석했지만, 그건 역시 무리수였다. 퇴근하자마자 열심히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10분 정도 늦었고, 일을 하느라 에너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대면 지옥철로 변신하는 매우 복잡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오면서 간신히 붙잡고 있던 손톱만큼의 정신력마저 완전히 빠져나갔다. 독서토론 장소에 앉아만 있었지, 솔직히 내가 한 말도 다른 사람들이 한 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 토론이 끝났고, 사실 그 컨디션이라면 얼른 집으로 가는 것이 맞았을 것이나, 힘들게 참석한 평일 모임인 만큼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뭐도 좀 먹고 싶고, 사람들과 좀 더 느슨하고 편안한 대화도 나누고 싶었다. 물론 참석자들 중에서 가장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그였다. 그래서 뒤풀이 자리에도 참석했다.
일본식 술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묵탕과 약간의 술,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안주들을 먹자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그때부터 비로소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고, 집들이 때와는 달리 모두가 함께 대화를 하는 분위기라 그와 따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렇게 신나게 수다를 즐긴 지 한 시간 남짓 되었을까? 슬슬 다음날의 출근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마음이 점점 불편해져 할 수 없이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무거운 다리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면서 참석자 대부분이 직장인인데 그렇게 늦게까지 놀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처음 만났던 날처럼 재밌는 얘기를 나누지 못해 서운했다.
이렇듯 전날 서로를 밋밋하게 지나쳤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온 건 뜻밖이었다. 몇 년간 클럽 활동을 하며 남자 회원과 단둘이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조금 주춤했지만, 처음 만난 날의 대화를 떠올리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좋다고, 한 번 보자고 했다.
나는 직장인이고 그는 교육생이라 둘 다 평일보다는 주말이 더 편하고, 일요일보다는 토요일이 좋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고 나서 선약이 있는 토요일을 피하다 보니 약속이 3주 뒤로 미뤄졌다. 날짜가 확정되자 그는 나에게 몇 시가 좋을지 물어봤다. 잠시 고민했다.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식사를 극도로 싫어하니까 일단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은 패스. 또 늦은 오후로 약속을 잡더라도 대화가 길어지면 저녁 시간이 될 수 있으니, 그것 역시 패스. 그렇게 패스 두 번에 적절한 시간이 명확해져서, 나는 그에게 “2시가 좋을 것 같아요”라고 밝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