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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Apr 21. 2022

엄마의 무게

-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


얼마 전 <프레드릭>이라는 동화책을 아이와 함께 읽으려 빌려왔다. 마음에 쏙 드는 내용이라 한참을 감동하며 답지 않은 서평도 끼적였더란다. 아이에게도 엄마가 진짜 좋은 책을 발견했다며 함께 읽자고 꼬드겼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아이가 "잠깐만, 엄마."라 외친다. 읽기 싫어 그러나 싶어 내 안의 방어 레이더를 윙윙 돌리기 시작했다. "진짜 좋은 책이라 그래. 여기 이 들쥐 이야긴데 안 궁금해?" 따님은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나 이거 다 알아. 봤어."라 답한다. "이 책을? 어디서? 학교에서? 무슨 내용인데?" 듣고 있던 아이가 나의 계속된 추궁에 자리를 박차더니 자기 방 책꽂이를 막 뒤진다. "엄마, 이 책 우리 집에 있어. 난 이미 읽었고, 이거 봐. 여기 있잖아. 똑같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이런 거려나. 집에 같은 책이 있다니, 충격이었다. 주변에서 옷이나 가방 같은 건 안 물려줘도 책들을 엄청 가져다줬는데, 거기에 끼어있던 것 중 하나였나 보다. 아직도 풀지 않은 책꾸러미들이 한 보따리니 말할 자격이 없다. 아이는 자기가 여섯 살 때부터 이 책이 집에 있었다며 이미 벌써 여러 번 읽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몰랐냐며 구박을 쏟아낸다. 할 말을 잃은 채 한참을 들었다. 들어도 싸지, 자책하면서 말이다.


문득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내용보다도 제목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아마 아이의 사생활이 궁금해질 시기가 왔기 때문일 테다. 미주알고주알 조잘대는 따님이지만 이번처럼 전혀 모르는 일이 자꾸 생긴다. 어디까지 모른 척해야 하고 또 굳이 알아내야 할지, 그 경계를 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너무 모르면 내 아이가 어디쯤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 할 테고, 많이 알겠답시고 들쑤시고 다니면 비밀이 늘어나 아이의 삶이 복잡해질 테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끝없는 밀당이 이어진다.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시원하게 사과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미리 읽어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사과를 받아들이곤 "엄마도 모르는 게 있네. 내가 아는 걸 왜 엄마가 몰라?" 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그 말에 이어 엄마가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질 테니 잘 가르쳐달라 부탁했다. 하루 종일 자신감에 올라간 아이의 어깨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괜한 것에 오늘도 엄마의 무게를 느낀다. 살아가며 온전히 이길 수 있는 대상이 몇이나 될까 생각한다. 지고 깨지는 인생 속에 엄마 한 명은 늘 이길 수 있다 여기길 바라본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아이의 삶을 최선을 다 해 지켜줄 수 있는 사람 역시 엄마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비빌 언덕이라면 기꺼이 되어주고 비바람 막이 우산이라면 당연히 내어줄 테니, 언제든 기대고 숨는 아이로 돌아와도 좋다. 그게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값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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