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 없이도 잘 살아볼게
자궁적출을 앞두고 나의 자궁에게 인사를 하다
아주 오랫동안
애증의 관계였던
너와 이별을 하려 해.
사랑했지만
이젠 보내줄게.
더 이상 너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지만
너를 더 붙잡기엔
너무 지쳤고
고단하다.
항복이다.
너와 함께여서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한때 나는
너가 나의
정체성이라고 여겼다.
한때 나는
너가 나의
존재의 이유라고 여겼다.
그러나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너 없이도 사랑을 꿈꿀 수 있다고
이제는 그렇게 믿고 싶다.
너와의 에피소드는
그동안의 내 인생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내 몸과 정신을
뒤틀고 흔드는 너의 거센 방황을 견디기엔
또 다른 나의 인생이 너무 안쓰러워
이제는 너를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게
보내주려고 한다.
그래도 너를 만나
행복했고 고마웠다.
안녕, 나의 자궁아
만 나이로 36살.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애매한 나이이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는 역시 많은 나이다.
초경을 시작할 때부터
부인과 진료를 봐야 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알 수 없는 부인과 질환으로
질병결석이 수없이 많았다.
하혈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빈혈로 쓰러져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내가 결혼 후 20대 후반부터 난임병원을 다녔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도 한 몫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의 긍정적인 면이 보이긴 한다.
혼자라 좋은 점은
선택이 간편해졌다는 점이다.
여러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여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자궁적출이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결혼기간 동안
인공수정과 시험관시술을 7차례나 해보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다.
전남편의 정자기능도 좋지 않았지만
사실 나의 자궁이 더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갖고 싶어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했고
간절한 마음에 조금 더 무리해서 호르몬을 처방받거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한 부분도 있다.
시험관시술 실패 후에는 매번
응급실 행이었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마약성 진통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복통과 요통, 다리저림등이 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올 초 태국에 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하혈과 하복통으로 고생을 했고
긴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와 진료를 보았다.
임시 치료 후 일정상 다시 해외로 나갔지만
부인과 진료 후 자궁선근증 진단을 받았다.
보통 자궁적출 수술은
출산을 모두 마친 여성들이 선택한다.
미혼이거나 출산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진통제와 다른 대체 치료로 통증을 버텨본다.
사실 나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자궁적출을 선택한 건 아니다.
아직도 나의 아이를 낳아보고 싶고
또 새로운 사랑도 하고 싶다.
자궁이 없다고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인연과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혹시나 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과 소원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통증이 있다.
일상생활이 어렵고,
앉거나 누워도 쉽게 나아지지 않으며
진통제 없이는 한 시간 버티기도 어렵거나
혹은 진통제조차 말을 듣지 않는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내가 꿈꾸는 희망찬 미래도
평범한 오늘도 모두 망가뜨렸다.
결혼도 안 해보고
시험관시술도 수차례 안 해봤으면
수술결정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살면서 더욱 와닿는 말이 있다.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적은 법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아쉬워하지 말아야지.
앞으로 펼쳐질 즐거운 날들을
앞으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들을
상상해야지.
Play list
긴 하루가 저문 이 거리
나 무심코 바라본 하늘엔
다 잊었다 말하던 꿈들
붉게 물든 마음
Cause I want to be free
and want to be free
모두 다 사라져도
부는 바람만은 내 곁을 머문다
바람에 머문다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