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과 우리 선생님
내가 열 살이었을 때, 아마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 선생님이 창문을 열며 말했다.
“얘들아, 첫사랑의 맛이 궁금하지 않니?”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지만, 그렇게 툭 굴러오니 괜히 궁금해졌다.
조용하던 교실은 웃음과 소곤거림으로 부풀어 올랐다, 풍선처럼.
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우리를 집중시켰다.
“내가 어릴 때, 선생님의 선생님께 배운 게 있는데, 오늘 그 생각이 났어. 저기 운동장 끝 오른쪽, 그네 뒤에 있는 나무 보이지? 저게 라일락 나무야. 지금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가 바로 라일락 향기야. 참 좋지? 첫사랑의 맛이 궁금하면 쉬는 시간에 나가 봐. 짙은 초록 잎을 하나 따서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고, 네모나게 만든 다음, 입 안 깊숙이 넣고, 이게 중요한데, 한 번에 꾹 깨물어야 해. 그러면 첫사랑의 맛이 느껴질 거야.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보니까 정말 첫사랑의 맛이 맞더라.”
수업이 끝나자 반 아이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곧바로 나무로 달려간 아이들, 구경하며 눈치를 보는 아이들, 그리고 창가에 남아 바라보는 아이들.
나는 달려간 쪽이었다.
친구들과 나뭇잎을 따서 조심조심 네모나게 접었다.
막상 입에 넣으려니 겁이 났지만, 알고 싶으니까.
“하나, 둘, 셋!”
구경하던 아이가 셋까지 세주었고, 나는 용기를 내어 한 번에 꾹 깨물었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강조한 ‘한번에’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 입안에 쓴맛과 떫은맛이 순식간에 퍼졌다.
우리는 인상을 찡그리고 퉤퉤 나뭇잎을 뱉어냈다.
“으악, 써!”
“이게 뭐야!”
“속았어!”
“우웩, 퉤퉤!”
운동장을 가득 채운 우리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교실 창문까지 닿았을 것이다. 노란 햇빛에 번지던 얼굴들이 어렴풋하다.
수돗가로 달려가 입을 연신 헹구었다.
입안에 붙은 쓴맛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도 왜 그리 신이 났던지,
풍선을 가장 높이 띄운 건 라일락 잎을 씹은 우리들이었다.
뒤늦게 맛보기로 한 아이들은 겁이 나서 시늉만 했다.
다 알아서, ’한 번에 꾹‘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그 애들의 풍선은 높이 뜨지 못했다.
교실로 달려간 우리들은 선생님을 향해 외쳤다.
“선생님, 어떻게 우리를 속이실 수 있어요!”
원망 섞인 목소리에도 웃음이 실실 샜다.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중에 크면, 아, 정말 첫사랑의 맛이었구나 할걸? “
선생님의 웃음소리는 시원한 바람 같았다.
그래, 나는 열 살에 라일락 잎으로 첫사랑의 맛을 맛보았다.
어떤 첫사랑은 그런 맛일 거고, 첫사랑이 아니어도, 어떤 사랑은 그런 맛이겠지만,
그보다도, 세상 모든 사랑에 그런 맛도 숨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라일락 잎을 꾹 깨물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