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질 무렵이면
길가에 토끼풀이 촘촘하고 폭신하게 깔렸다.
그 사이사이로 하얗고 동그란 반지꽃이 솟아났다.
나는 꽃이 보송하게 크고
줄기가 빼꼼하게 긴 반지꽃을 찾았다.
반지꽃이 반지꽃인 이유는
반지를 만들고 노는 꽃이어서였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겐 그 반지 만들기가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반지나 팔찌는 더 어릴 때,
내가 도무지
얇은 꽃줄기를 살짝만 반 갈라
거기에 다른 꽃줄기를 끼우지 못할 때,
두 줄기로 끊어지지 않게 매듭을 지을 수 없을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거였다.
이미 꽃을 엮는 솜씨가 좋았던 나와 내 친구들은
화관과 꽃목걸이, 그리고 꽃줄넘기를 만들었다.
길가에 반지꽃이 얼마나 많았던지
긴 줄넘기를 각자 만들고도 꽃이 남았다.
꽃줄넘기를 넘을 땐
아스팔트나 흙길은 피해야 했다.
폭신한 풀밭에서 넘어야
꽃줄넘기가 오래갔다.
줄넘기를 많이 하면
군데군데 줄기가 빠질 수 있어서
딱 기분만 내는 정도로 넘었다.
깔깔깔 웃으며 배를 잡고 구른 다음에
이 줄넘기는 각자의 집으로 변했다.
동그랗게 또는 네모지게
꽃줄넘기를 바닥에 놓으면
그 안이 바로 내 집이 되었다.
집놀이가 끝나면
이제는 클로버를 찾아야 했다.
꽃줄넘기를 만드느라
길가를 따라 꽃을 엮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으니,
이제 네 잎클로버는
조금씩 조금씩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며 찾아야 했다.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찾았다!” 하고 외치면
우리는 모두 그쪽으로 달려갔다.
네잎클로버는
함께 모여 나온다는 걸
그때도 자연스럽게 알았다.
누구라도 하나 이상 네잎클로버를 가질 수 있었다.
많이 찾은 사람이 나눠주는 게 당연했으니까.
어느 날, 내 친구가 말했다.
“버스 타고 서점에 가면
네잎클로버를 코팅해 준대.”
코팅이라니!
그때 나에겐 코팅이라는 게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오빠가 있던 내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맏이였다.
버스를 타고
코팅을 해주는 서점까지 가는 법을 몰랐다.
투명 테이프로
코팅처럼 붙여봤지만
하나도 멋지지 않았다.
테이프로 붙인 게 쭈글쭈글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기운이 쭉 빠졌던 어느 밤이 기억난다.
며칠 후, 친구가 나에게
코팅한 네잎클로버를 선물로 주었을 때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애는 모를 거다.
모를 거다.
대롱대롱 아이스크림통에
코팅 클로버를 꽂아놓고
보고 또 보았었다.
토끼풀꽃, 반지꽃, 클로버꽃은
다 같은 꽃이다.
우리는 같은 꽃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그렇게 배웠다.
네 잎은 클로버,
세 잎은 토끼풀,
꽃은 반지꽃—
이런 식으로 부르곤 했는데
우리에겐 퍽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토끼풀이 보이면
그때가 생각난다.
꽃을 엮고
네 잎클로버를 찾던 기억이
내 손끝,
지문의 굴곡 어디쯤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