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집, 학교, 학원 등 틀에 박힌 일상에서는 마음도 공허하기 쉽다. 쉬지 않고 변화를 원하는 사춘기의 뇌는 일상을 거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딸도 다람쥐 챗바퀴도는 지루함의 공간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과 마음 걸음을 옮겨 보길 간절히 원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두 아들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공감하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사춘기를 맞이한 딸에게 가급적이면 자주 낯선 순간과의 만남을 주고 싶고 그곳에 아빠로서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의 낯선 만남을 계획했다.
두 명의 천사를 만나다
속리산으로의 여행이다. 아내도 함께 동행했다. 배낭에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기록한 종이와 산행 중에 먹을 간식 종류를 넣고 출발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운전해 가다 보니 벌써 속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세조가 병 치료를 위해 속리산에 머물렀다는 사연들이 이곳저곳에 적혀있었다. 그때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조의 사연 속에 나는 딸과의 사연을 남기게 되었다. 세조가 병치료하며 거닐었다는 '세조길'은 사랑하는 딸과 엄마 아빠가 걸은 '인생길'이 되었다. 그리고 세조가 '삼강오륜'을 읽었다는 문장대에서는 5전 6기의 정신으로 끝까지 정상에 올라 사춘기 딸에게 해 주고 싶은 아빠의 글을 읽었던 사연 있는 곳이 되었다.
문장대까지 오르는 과정에 딸은 너무나 힘들어했다. 중간에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때마다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을 때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귤 1개를 주며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네고 가셨다.
“학생, 힘내요!”
천사의 소리였다. 딸이 제대로 들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고비인 돌계단을 앞에 놓고는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아빠로서 아무 말없이 기다려 줄 뿐이었다. 그때 또 천사가 나타났다. 문장대에서 돌계단으로 내려오던 아주머니. 천사의 강력한 말이 방전된 딸의 에너지를 일순간에 충전해 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예전에 여기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내려갔어요. 저 계단을 보니 도저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 그런데 내려가서 후회했어요. 그래서 오늘 마음먹고 다시 왔어요. 지금 여기서 내려가면 후회할걸요. 계단 오를 때 멀리 보지 말고 바로 앞 계단만 쳐다보고 가요. 그럼 올라갈 수 있어요. 힘내요.”
딸의 뇌 속에서 포기와 도전이라는 생각 싸움이 일어나고 있을 때 싸움을 멈추게 할 결정타와 같았다. 나와 딸은 격려의 말과 함께 환한 미소로 응원해주며 하산하는 천사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천사의 소리야. 잘 생각해 봐.' 내 마음의 소리를 보냈다.
천사 아주머니가 눈에서 사라질 쯤에 딸의 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 의자에 앉은 채로 오른발을 움직이며 ‘내려갈까’ 왼발을 움직이며 ‘올라갈까’를 반복하고 있는 딸, 생각 에너지 충전 중이었다. 나도 마음으로 응원했다. 자신의 후회되는 등산 얘기를 해주면서 올라갈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떠난 아주머니의 말에 힘을 얻어서 인지 딸은 비장한 각오로 말을 했다.
“올라가요. 아빠. 여기까지 왔는데 내려가면 아까울 것 같아요.”
방전된 차가 충전이 되어 시동을 걸고 출발하듯 나는 딸의 손을 잡고 그 아주머니가 알려준 방법을 되새기며 고개를 숙인 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이렇게 하여 결국 돌계단의 끝을 밟았고 문장대를 정복하였다. 정상에 선 딸은 환한 미소로 주변의 풍경을 두 눈에 마음껏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산 밑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낯섦 속의 새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성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다.
문장대에서 펼쳐진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아빠의 진심을 담아서 딸에게 보냈다.
"사춘기 길은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낯설고 힘들지. 그러나 그 길을 가본 사람은 그 길이 해볼 만하다는 것을 안단다. 그리고 왜 힘들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하면 가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 딸아! 너의 옆에는 아빠가 있고, 가는 도중에는 천사들이 배치되어 있을 거야. 그러니 문장대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 사춘기의 끝까지 천사들의 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자꾸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