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울리고 말았다

더 믿어 줄걸 그랬다

by lisiantak

인터넷 블로그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들을 보았다.

#1.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걷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들이 맹인이 길을 찾는 것처럼 걷는다.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 길을 더듬으며 가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2. 축구하러 나왔는데....: 한 소년이 공원에 축구공을 가지고 서 있다. 주변에 앉아 있는 또래들은 모두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축구에는 관심이 없다.

#3. 사람 살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한 손만 내민 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물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물에 빠진 사람을 촬영하고 있다. 구해주는 사람은 없다.

#4. 천국에 온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할 줄 모르나 보구나. 다들 절망적으로 자기 손만 쳐다보고 있어." 지상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모습 그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영들의 모습을 보고 천사들이 한 말이다.

지나친 스마트폰 의존도를 나타낸 그림들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듯했다. 이런 모습을 걱정해서 딸에게는 최대한 늦게 스마트폰을 사주기로 했다. 두 아들들에게는 중학생이 되면서 사주었지만. 전학 와서 학교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받지 않도록. 그런데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더 큰 문제들이 발생했다. 스마트폰에 시간 뺏기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걱정거리들이 생겼다. 공부시간도 뺏어갔다. 부모와의 마음의 거리도 더 멀어졌다. 아이들에게 가치관의 혼돈이 찾아왔다. 필터링 없이 모든 정보를 흡수했다. 옳고 그름의 구분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을 바로 잡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런 힘든 상황을 딸에게는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폴더폰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음 변하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했다. 잊어버릴까 봐 중간중간에 다짐을 확인하는 시간도 가졌다. 잘 지내는 듯했다.


아빠는 날 의심하는 거야?

하루는 내가 출근하지 않고 쉬는 날이었다. 딸이 등교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12층 베란다에서 딸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냥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내 눈에 뭔가 잡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뭔가를 보면서 가고 있는 딸의 모습. 정말 손바닥만 한 무언가를 보면서 가고 있었다. '폴더폰은 아닌데. 뭐지? 혹시 공폰이 있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어디서 공폰을 구해서 몰래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아들을 키워 본 경험에서 나온 추론이었다. '어떻게 하지?' 한 참을 고민했다. 의심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확인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 후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아파트에서 봤는데 뭔가를 보고 가던데 궁금해서" 조금 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말이에요? 아빠" "아니, 우연히 봤는데 학교 갈 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직사각형 무언가를 보면서 가길래 궁금해서" "아빠는 날 의심하는 거야? 몰래 공폰 사용한다고?" 그리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빠의 의심이 딸을 울리고 말았던 것이다. '더 믿어 줄걸' 믿어주지 못한 마음에 나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딸은 울리면서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한참만에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에게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폴더폰 사용한다는 것을 숨겼다고 했다. 집에 있는 태블릿으로 카톡을 사용하며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하냐고 물었다. 그랬었다. 부모와는 약속한 것이 있어서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친구들 세계에서는 힘들었던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폴더폰이 빨리 방전돼. 화면이 작아. 사진을 맘에 맞게 찍을 수가 없어. 수학여행 갈 때 사진 촬영하게 공폰 가져가도 돼요?" 이런 말들을 연결 해 보니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요'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올 때까지 왔구나' 이때가 중2 끝무렵이었다. 많이 참아준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스마트폰 사용 시기를 늦추고 싶었을 뿐이다.


눈물이 말해 주었다.

결국 아내와 의논 끝에 스마트폰을 사주기로 결정했다. 학교와 교회생활 등을 하려다 보니 스마트폰이 필요함을 공감했다. 결국 중3이 되었을 때 사 주었다. 스마트폰에 지배당하지 않고 주관하는 삶을 살길 바라면서.

무엇보다도 상처 받을 때마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내면에 고이지 않게 하라.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당연히 울게 된다. 아프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울라.(강지윤, '눈물의 힘' 중에서)


그동안 딸은 말할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상처로 여기지 않고 감내하고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부모와의 약속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흘리지 못한 눈물이 딸의 마음 한 구석에 고여있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느꼈다. 눈물이 말해주는 힘은 약하지 않고 진실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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