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반성문

미안해요, 미안 해.

by lisiantak
I'm sorry


한 참을 생각했다.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직도 어리구나.' 어른이란 바로 '자기반성을 통해 성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몇 번이고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느 방송사의 인터넷 신문에 올라와 있는 울림이 있는 기사였다. 두 어른의 반성문이었다.

서울메트로 사무실에 편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편지 속에는 현금 10만 원과 반성문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들들과 손주들에게 떳떳한 할머니가 되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수년 전 재미로 남편과 함께 지하철 매표소에서 경로 우대권을 받았습니다. 당시 60세를 갓 넘긴 나이였지만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남편의 외모 덕분에 역무원의 의심을 피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후로도 3년 동안 가끔 부정 무임승차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손주들 때문이었습니다. 손주들에게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며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치다가 자신의 거짓말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던 겁니다.

또 다른 어르신이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 어떤 할아버지가 손으로 쓴 반성문과 현금 50만 원이 도착한 겁니다. 반성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할아버지는 고향 영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청송군 진보면 여관에서 하룻밤 머물렀던 할아버지. 하지만, 여관비 낼 돈이 없어 새벽녘에 몰래 도망쳐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날짜를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1945년 9월 14일이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는 그때 일이 너무나 후회된다며 편지를 보낸 겁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여관도, 그 주인도 없어 돈을 갚을 수 없으니, 돈은 진보면 사무소의 여관 업무에 사용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편지를 쓴 할아버지는 근현대사 학계에서 유명한 원로 역사학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어른의 사연은 내면의 이끌림에 의해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었다. 이런 진심 어린 반성이야말로 미래를 밝게 한다고 생각한다. 반성이란, 과거의 잘못된 것으로부터 완전한 단절을 이루고 새롭게 미래와 연결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어른은 과거의 잘못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었을 것이다. 그분들의 미래는 가볍고 행복할 것임에 분명하다. 개인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 독일은 과거사의 철저한 반성의 토대 위에 독일의 미래를 세웠다. 그래서 지금의 독일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가정은 어떤가? 끊임없는 전쟁이 연속되는 곳이 가정일 것이다. 그 어떤 가정도 전쟁으로부터 100% 안전을 보장받은 가정은 없다고 본다.


평화냐 전쟁이냐? 그 선택은 부모에게 있을까 아니면 자녀에게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녀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자녀 하기에 달려있다고 말할 것이다. "얘들이 어떻게 했길래 부모가 그렇게 했겠어. 뻔하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녀 사춘기와의 7년 전쟁을 겪고 나서(물론 지금도 국지전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지만) 드는 생각은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지만 반성문을 써 나간다. 나를 치유하려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 때문에 아픔을 겪었던 아들들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또 자녀와 엄마라는 관계의 사이에서 존재했던 샌드위치 남자로서 반성할 부분도 많았다. 특히 아내에게. 가정이라는 소단위에서 벌어지는 자녀의 사춘기와의 전쟁은 인생 어느 시점엔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성의 과정이 없다면 부모든 자녀든 누군가는 죄책감 속에서 성장을 멈춘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될지 모르는 인생 앞에 미안하지 않도록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이렇게 반성의 글을 쓰면서.


그리고 아이들은 성장한 어른이 되어 나와 같은 부모의 역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반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우리 모두 아픔을 묻어 둔 채 살지 말자. 서로를 위해서. 아픔은 성장의 길목에 가시와 같아 또 다른 아픔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처럼.


반성이란?

어학사전에서 '반성 (反省)' 이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아내의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가?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내면을 치유를 하고 있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잘못된 언행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영화의 필름이 되돌려지는 것처럼.


언젠가 함께 공부를 하던 조원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다. 필드에 나간 지 세 번째, 처음으로 버디를 하고 모자에 나비 스티커를 받았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계속했다. 잘 나가고 있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급히 내려와야겠다는 어떤 사람(모두의 평화를 위해 구체적 표현을 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세요)의 전화를 받았다.


골프를 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급한 일이 있다며 가야 된다는 말에 캐디도 조원들도 모두가 의아해했다. 끝까지 치고 가라고 모두들 난리였다.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한데 골프를 치다 말고 가. 다 치고 가" 내 마음과 한참 동떨어진 말이었다. 미안했지만 어렵게 이해를 시키고 골프장을 떠났다. 외딴곳이기도 했고 갈 길이 멀어 택시를 호출했다.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렸다. 택시값은 20만 원 정도 나왔다. 사실 이 일로 더 이상 골프는 치지 않았다. 골프 트라우마가 생겼다.


아들과 엄마 사이에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서로가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였다. 나는 누구를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하는가? 누구를 더? 아내를 잠깐 보고 아들에게 갔다. 나의 선택은 그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때의 나의 태도에 아내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누구보다 남편은 아내를 더 챙겨주고 위로해 줄 줄 알았던 것이다. 그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던 나였다. 사랑의 크기 차이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아내는 어른이고 부모였기에 자녀 앞에는 언제나 희생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을 주관하는 한쪽 뇌의 명령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 제정신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아내를 위로하고 품어주고 나서 아들에게 갔어도 충분했다. 그때는 흥분된 마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해요" 그리고 아들에게도 미안했다. '엄마를 화나게 했으면 벌 좀 받아야지. 그 정도는 받아도 싸' 아빠의 이런 가벼운 생각이 아들을 서운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화풀이의 대상은 결국 아빠 대신 엄마였다. 속담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지 말라'라고 했는데 건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아, 미안해" 사춘기 자녀는 짐승과 같다고 누군가 말했다. 민감한 사자의 코털은 내가 건들고 아픔은 아내가 받았던 그 날. 진심 어린 반성을 통해 영화의 한 장면을 '컷'하고 싶다. 다시 촬영할 수 있는 인생 영화라면 'NG'라는 감독의 말이 듣고 싶다. NG 냈다고 혼나도 상관없다. 다시 촬영하지 않으면 영화를 볼 때마다 서투른 모습에 더 괴로울 것이기에. 왜 인생에서 NG는 재촬영하지 않는 걸까?


아이들은 수 없이 NG를 낼 것인데.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말할까? "또 NG야, 언제까지 NG 낼 건데?" 아니면 "NG내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 아이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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