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갈림길 앞에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by lisiantak
자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사춘기 아이들을 놓고 고민하던 중 듣게 된 이야기다. 한 사례라며 상담해 주는 분이 이야기해 주었다. 자식의 사춘기에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여행을 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단다. 대단한 아빠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민만 하다가 결정을 못하고 버티고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그런 일은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던 동기생이다.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니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빠의 결정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나는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일까? 어쨌든 동기생은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만류했다고 들었다. 그 방법 말고 차선책을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렇게 쉽게 그만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게 쉽게'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아이를 위해 함께 있어 줄 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라는 존재, 제 때 제 위치에 있을 때 힘이 된다. 세월이 흘러 그를 만났다. 아이도 잘 되었고 그도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나는 하지 못했던 결정을 과감히 행했던 그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생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 삶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헤라클레스처럼 보상을 받거나 메데이아처럼 후회를 동반한다.

<신화 인간을 말하다>의 저자 김원익은 책에서 네 가지 갈림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갈림길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나 메데이아가 부닥쳤던 갈림길처럼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길이다. 이 경우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엇갈린다. 헤라클레스처럼 올바른 길을 선택한 경우는 나중에 후회가 있을 수 없다. 이에 비해 메데이아처럼 그른 길을 선택한 경우는 일반적으로 나중에 극심한 후회를 동반한다.
둘째, 영웅 이아손,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테세우스, 아이네이아스 등이 부닥쳤던 갈림길처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쉽고 어려움에서 차이가 나는 길이다. 이 경우 주인공은 나중에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는다. 선택한 길이 고난의 길이었지만 명예롭고 의로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프루스트 시의 화자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주인공 빌헬름이 부닥친 갈림길처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길이다. 이 경우 주인공은 나중에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아도 아쉬워할 수는 있다. 못 가본 길도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원래 의도한 길은 포기한 채 등 떠밀려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물론 이 경우는 반강제로 가는 길이기에 갈림길이라는 말을 쓰기가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아주 힘들지만 이 경우도 다른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있었기에 갈림길인 것은 분명하다. 이 경우 주인공은 현재 가고 있는 길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할 수 있다.
(김원익 저, 신화 인간을 말하다. p.382-384)


내가 아들들의 사춘기 앞에서 고민하는 갈림길은 어떤 길인가? 세 가지 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길이었다.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나는 길,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길, 등 떠밀려서 갈 수밖에 없는 길. 어떤 길이든지 선택 후에는 후회는 하지 않겠지만, 등 떠밀려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갔다면 후회는 있을 것 같다. 아빠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나 자책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 떠밀려서 선택하기 전에 온전한 길을 택해야 했다. 주체적으로.


조우성 저자는 <리더는 하루에 백 번 싸운다>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리더도 사람인데 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인기와 평가에 영합하는 순간 중심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CEO라고 어렵다고 생각하고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결정을 내리면 직원들이 좋아할까’ 등등 이런 생각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는커녕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 p.93∼94 「제10강: 인기에 영합하는 리더십은 위험하다」)

직장을 그만둘 것인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신경 쓰여서 수많은 고민을 하였다. 조우성 저자의 말처럼 하루에 백 번도 더 생각 싸움을 한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절차가 필요했다. 수 천명의 리더 자리를 비워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직을 위해서. 조직이 먼저냐? 가정이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질문들이다. 아들들의 사춘기에 동일한 질문을 놓고 답을 못 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어서인가? 얼마나 의식하고 있었던가? 자식들을 잘 키우며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가 중압감으로 찾아 왔다. 그래서 무너져 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들로 인해 나는 생각의 중심을 잃고 있었다. 진정한 나의 삶의 기준은 아이들도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했었는데. 이것을 깨닫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미뤘을 뿐

평생 자식을 희망 삼고 살아가고 계신 부모님이 눈에 아른거렸다. 또 한편으로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던 부모님의 삶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부모님처럼 할 수 있을까? 희생,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나이 드신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와 내가 자식을 위해 버려야 하는 삶.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내 두 어깨를 커다란 삶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너무나 무거웠다. 어느 것 하나 내려놓지 않으면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것을 내려놓을 것인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 그런 몸의 상태에서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벽에 걸린 내 사진을 바라보고 계셨던 분. 몇 년 전부터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인생길은 아버지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셨기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시고 살으셨다. 물론 아버지의 선택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3 때 내가 아버지의 선택을 내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내 삶을 내가 선택했기에. 그런데 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 자식에게 힘든 길을 선택하게 했다고. 이제 나는 아빠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두 아들의 아빠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문득 딸이 생각났다. 나는 딸의 아빠이기도 한데. 두 아들만 생각하게 되면 곧 사춘기에 진입할 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결국 나는 현재의 아빠 노릇에 초점을 맞추는 선택을 하였다. 모든 절차를 밟아갔다. 이제 조직의 리더를 떠나 가정의 리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였다. 어느 날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역하지 말아요. 내가 더 잘해볼게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갈림길에서 아내는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갈림길에 서서 머뭇거리는 사이 내 선택이 아닌 아내의 선택이 내 길이 되었다. 아버지가 선택해 준 내 길처럼.


'그 많은 사건과 인생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면서 비천한 것들이 존엄해지기도 하고 잘난 것들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비천해지고 하는 게, 마치 지류의 맑고 탁함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큰 강이 도도히 흐르면서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을 생육하는 것과 같은 장관입니다.'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신원의 문학> 중에서)

이후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했다. 아빠의 마음은 '지류의 맑고 탁함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큰 강'처럼 되어야 했다. 그런 마음 안에서만이 자식들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갈만했다. 아, 나도 언젠가는 소설가 박완서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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