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베스트셀러 소설처럼 내 인생 플롯도 그랬다.

by lisiantak
아모르파티(amor fati)란?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 인생은 지금이야 / 아모르파티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파티', 삶에 위안을 주는 노래 가사다. '모든 걸 잘할 순 없으니 실망하지 마'라는 가사에 더욱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의 위로일 뿐. 다시 찾아드는 운명의 그림자가 나를 늘 괴롭게 만든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빠'라는 위치를 벗어나 살 수는 없는 운명적 삶. 그 운명적 삶을 살다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 시간들. 과연 나는 노래 가사처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과거를 사랑하며 전진할 수 있을까? 희노애락으로 굴곡진 삶이 내 운명이라면 '아모르파티'가 담고 있는 의미처럼 내 운명적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거의 운명적 그림자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아모르파티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로,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용어이다. 운명애(運命愛)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사색에 잠겼다.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정해진 운명보다는 내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임을 믿고 살고 있다. 결국 그 말은 '내가 만들어 낸 내 인생을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한 편의 인생 영화를 촬영했는데 '컷'하고 싶은 장면이 생겼다. 그래서 내 인생 전부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왜 감독은 NG 싸인을 주지 않았을까? 슬프고도 아픈 현실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인생의 한 순간을 지울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깊은 한 숨만이 나온다.


쓰다가 틀린 사춘기 아들과의 사랑, 지울수 없어


어린 시절 자주 불렀던 어떤 가수의 노래가 떠올랐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부모 연습 없이, 특히 아빠 연습 없이 아빠가 되어 버린 나. 그래서 임시방편의 아빠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핑계는 많았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거나, 한 달에서 몇 달까지 집에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 좋은 핑계였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아빠 노릇. 그래서 노래처럼 너무 진한 잉크로 부자간의 사랑을 써 내려갔던 것일까? 자신만만하게. 아이들의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바로 후회가 찾아들었다. 사춘기라는 찬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니 손이 굳고 눈물이 흘러 잉크로 쓴 글씨가 번지기 시작했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고 싶은데 지울 수 없는 현실은 눈물의 강이 되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인생 부실공사의 연속이었다. 태풍과 지진에 취약한 인생 건축물을 짓고 말았다. 첫 째 아들의 사춘기에 연이은 둘 째의 사춘기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두 개의 지진판이 동시에 흔들리는 가운데 정신 못 차렸다. '어디서 잘 못된 것인가? 왜 나에게, 우리 가정에 이렇게 힘든 사춘기 홍역이 찾아왔는가?'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수도 없이 먹었다. 가까스로 7년을 버티니 어느 정도 살만했다. 그러나 또 예상되는 강력한 딸의 사춘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인생의 내진보강 공사가 필요했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튼튼한 기둥을 세워야 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

쓰다가 틀린 사춘기 아들과의 사랑,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전쟁이었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전쟁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들이지 나에게는 없을 줄 알았다.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들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정말 지우고 싶은 시간들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모든 걸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내 인생, 그것은 정말 잘못 생각한 것이었던가? 그런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속삭이는 소리, 아모르파티!


베스트셀러의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 앞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 과정 속의 사건들에 독자들은 빠져 들어간다. 때론 눈물을, 때론 안도의 마음을 표현하며 공감하고 만족해한다. 소설은 그래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아몬드>라는 소설도 그런 플롯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내 인생은 그런 플롯으로 구성되면 안 된다. 나는 아프면 안 되니까. 아프면 힘드니까.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미 소설이 갖추고 있는 플롯으로 내 인생은 진행되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처럼 내 인생의 플롯도 그렇게 구성되었다. '동행의 플롯'이라고나 할까? 이제 아빠의 각성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의 답인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 되어서.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아몬드' p.261)


"아무 일 없지? 잘 지내지?"

전화에서 들려오는 소리. 어머니께 전화드리면 언제나 빠짐없이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빠지지 않는다. 나도 언제나 답은 똑같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전화받기 전 사춘기 아들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였지만 그렇게 답 해야 하는 나였다.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품은 채 살아 가고 있었다. 성숙하지 않은 미숙한 아빠로서의 사랑을 운명인 것처럼!



keyword
이전 05화어린왕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