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옆에는 아들이 동행했다. 아들과 아빠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에 응어리진 모든 것을 파도의 힘을 빌어 쏟아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로 바닷가로 향했다. 우리 둘은 바닷가를 거닐며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서 발길을 멈췄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데리고 있으면서 대화 좀 해봐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한참 동안 바다를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20년 넘게 명령과 지시체계에서 살아온 내 인생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불복종과 하극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 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너무나 당황하고 있는 나였다. 한 마디의 말이면 모든 것이 질서를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사춘기의 아들은 통제권 밖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계속 부딪히니까 좀 떨어뜨려 놓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충돌만 계속될 뿐이었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만나면 안 되는 사이처럼. 나는 그 사이에서 제대로 중재자 역할도 못하고 힘들어만 하고 있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면 움직이는 조직생활에 익숙한 나였기에 내 말이 먹히지 않은 현실 앞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아들은 엄마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엄마는 아들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서로가 이해를 못하는 현실을 나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도 못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노력은 해봐야 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동해의 어느 바닷가에 와 있다. 누군가 바다에 가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고 했던가. 엄마를 대변하기도 해야 하고, 아들의 마음을 품어주기도 해야 했다. 파도 소리에 간신히 들릴 정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야기, 아들의 진로 이야기 등 등. 아들과 나의 대화는 파도소리를 넘지 못했다. 조용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해하는 것인지 그냥 들어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제는 엄마를 대변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네가 그런 엄마를 이해해야 해"
나의 이 말은 엄청난 휘발성이 있었다. 불 난데 기름을 갖다 부은 격이 되었다. 그동안 파도를 넘지 못한 소리가 이제는 파도를 넘어 수평선을 향했다. 나도 있는 힘 껏 큰 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러니까 엄마가 그러는 거잖아!" 아들은 더 크게 말했다. "엄마가 안 그러면 나도 안 그런다니까요" 아, 말이 도무지 안 통했다. "왜 나한테만 잘하라고 하죠. 엄마도 잘해야지" 얼마 동안 설전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벽창호 같은 놈이 또 있을까?' 지쳤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해. 네 인생 네 것이잖아. 대신 엄마는 힘들게 하지 마. 자식으로서의 선을 넘지 마"
나는 아들과 대화를 포기하고 파도에게 말했다. "아-------" 파도에게 한 말은 단순하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내 마음이 뻥 뚫릴 때까지 계속했다. 파도는 내 말을 잘 받아 주었다. 마음이 편해질 때쯤 나는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배도 고팠다. 식당을 찾고 있었다. 아들도 똑같은 마음이었는지 말없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어찌하겠는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버스 타러 가자."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한 마디도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한 말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겠지.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허공에 외친 소리는 아니었을 거야. 잘했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아내도, 자식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지 않을 거니까. 샌드위치 아빠로서 무관심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족일 뿐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샌드위치 아빠가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아들과 보낸 날들이 얼마 지났을까? 언제나처럼 아내는 전화로 말했다. "내가 다시 잘해 볼게요. 내려 보내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 채 나는 어쩌면 아내의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엄마의 힘'인가? 이번 일도 결국은 아무 역할도 못하고 아내에게 아들을 맡긴 채 나는 내 길을 걷고 있었다. 아내에게 잠깐의 휴식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어쩌면 아빠보다는 남편으로서 아내를 응원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곧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그냥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만이 답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희망대로 아들이 돌아왔을 때 필요한 것은 엄마의 건강하고 따뜻한 품일테니까. 그래서 온몸을 다해 아들의 사춘기와 맞서 싸우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내는 없고 엄마만 있었다. "힘내요. 그리고 미안해요" 이것이 샌드위치 아빠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