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부모의 어깨 위에서 멀미하는 아이들

사랑과 미움이 시소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한다.

by lisiantak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심윤경 장편소설 <설이> p.270


나는 어릴 때 버스로 장거리를 이동할 때면 어김없이 멀미를 했다. 버스의 냄새도 있었고, 체질상 멀미를 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또 배를 타고 제주도 갈 때 얼마나 많은 멀미를 했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의 멀미하는 냄새에 더 심했다. 내 멀미하는 냄새도 주변 사람들의 멀미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파도를 가르며 출렁거리는 물결 위를 달리는 배는 정말 싫었다. 영화에서 보는 낭만적인 모습은 잔잔한 강물 위에서 타는 유람선에서나 가능한 듯싶다. 그 후로 배 타고 제주도에 간 적은 없었다. 달팽이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인지 멀미약은 도움이 안되었다. 또 한 번은 헬기를 타고 서울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헬기 탑승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지 헬기 조종사는 스릴넘치는 곡예비행을 하였다.내가 원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보지 않는데 비행 기술을 자랑이라도 하듯 하였다. 오르락내리락했다가 좌로 기울고 우로 기울고를 반복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맛있게 먹었던 모든 음식들을 다시 쏟아내며 확인해야 했다. 오른쪽 뒤 호주머니에 손수건을 항상 가지고 다닌 게 다행이었다. 만약 손수건이 없었다면 헬기 바닥은 폭탄 맞은 뷔페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조종사가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임무를 어떻게 수행했는지도 모르고 헤어졌다. 이처럼 신체의 기능이 감당하기 어려운 흔들림은 여지없이 멀미를 만들어 냈다.


멀미란 뭘까?

1. 차, 배, 비행기 따위의 흔들림을 받아 메스껍고 어지러워짐. 또는 그런 증세.
2.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짐. 또는 그런 증세.
3. 어떤 분위기에 깊이 몰입하거나 흠뻑 취했을 때 느끼는 현기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어사전-

멀미에 대한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흔들림에 의해서 메스껍고 어지러워지는 증세나 어떤 것에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짐을 나타낸다고 되어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배에 탑승해서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게 된다. 부모는 항해사요 선장이며 조타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모의 실력이 배와 탑승자의 안전을 지켜 준다. 항해 중에 파도와 기상에 따라 어떻게 조치를 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배를 운전하는 부모에게는 결점이 있다. 공식적으로 가정이라는 배를 어떻게 운전해야 되는지 배워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책으로부터의 학습이나 먼저 부모가 된 사람들을 멘토로 삼고 배운 것도 아니다. 그냥 부모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무자격,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센 풍랑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런 부모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어지러워 멀미를 하게 된다. 멀미하는 아이들이 하는 말. "이렇게 힘들어할 거면서 우리를 왜 낳았어?"


처음에 엄마의 뱃속 10개월은 정말 안락하고 편안하게 키웠다. 그러니 멀미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배의 운전을 정말 잘했다. 왜 그럴까? 임신은 두렵기도 하고 뱃속의 생명이 신기하고 신비해서 임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다. 좋은 말, 좋은 음악과 소리, 좋은 음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에 온 신경을 쓴다. 그러니 뱃속에 있는 아이는 언제나 좋은 느낌을 받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10개월이 지나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타고 있는 가정이라는 배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끔씩 멀미를 한다. 그래도 참을만했고 부모도 잔잔한 파도 위를 운전할 만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니 상황은 달라졌다. 부모의 운전실력이 들통나고 말았다. 망망대해로 나가기 전에 파도와 싸워야 하는 법을 알고 단단히 준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암초가 어디 있는지 해로를 연구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가끔 다른 배들의 상황을 듣고 걱정이 되긴 했으나 남 이야기로 들었다. 그러다가 때를 놓치고 말았다. 배는 거센 파도에 순항하지 못하고 좌우 롤링이 심해졌다. 그 배안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심한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뒹굴기도 하고, 갑판 위로 올라가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참아 내려고도 했다. 힘들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을 때는 배에서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별의별 상황들이 다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세상이 캄캄해 보였다.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식 키우는 것은 힘든 일


집안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의 사춘기를 겪으며 기록했던 일기를 발견하고 펼쳐 보았다.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스스로 통제가 어려운 모양이다. 아내는 병들어 쓰러질 것 같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살려야 되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독을 주는 것이 아닌데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내는 침대에 엎드려 울기만 하는데 대책이 없다.' '또 실패다. 어떻게 해야 되지?' '(아들에게) 저녁 식사를 사주고 대화하다가 너무 대화가 안되고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아이들의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에 어쩔 줄 몰라했던 순간들이 적혀 있었다.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말도 안 통했다. 무능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어 버린 듯했다. 아내에게 오직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뿐이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맞기 전까지는 부모의 어깨야말로 세상의 짐을 모두 지고도 남을 정도로 튼튼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 아빠라는 존재는 가벼운 짐에도 심하게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사람에게도 자식을 키우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서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그분들께 나를 맡긴 건, 비록 스스로 키우지 못했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 심윤경 장편소설 <설이> p.268

소설 <설이>에서 훌륭한 사람 곽은태 선생님조차 자식을 키우는데서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사춘기 자식을 키우며 겪는 감정은 사랑과 미움이 시소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사랑했다 미워했다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부모의 어깨 위에서 멀미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위해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어깨를 가질 수는 없었던가? 후회는 후에 하는 거라더니 늦은 후회가 되었다. 인생은 삼세판이라고 했다. 두 아들들의 사춘기 때를 경험 삼아 더 튼튼한 아빠의 어깨를 만들어야겠다. 멀미하지 않는 딸의 사춘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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