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걸어보자

아름다운 사춘기 동행

by lisiantak
순응의 삶이란

10의 사춘기 딸과 50대의 갱년기 아빠. 나이 차이만큼 생각의 차이도 크다. 그러기에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생각의 다름으로 인해 충돌이 생기곤 한다. '생각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라는 사춘기에 들어선 딸의 생각에 항상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아래에 있는 물과 만난다.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갈 때는 물의 흐름과 같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기가 왜 이리 어려울까? 많은 경험과 다양한 생각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50대의 아빠가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행하는 10대의 딸에게 생각을 맞추는 것이 순응의 삶이라 본다. 딸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아빠의 자세다.

하루는 딸의 입에서 3글자의 무시무시한 말이 흘러나왔다.

"심심해"

나는 딸의 심심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머리 회전이 빨라지곤 한다.

"어떻게 하지? 어디를 갈까? 재미있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뭐지?"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뇌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마치 행사장에서 행운의 당첨자를 뽑을 때 번호표가 들어 있는 함에 손을 넣고 휘젓다가 번호표 한 장을 뽑기 직전의 순간과 같다. 드디어 한 생각이 잡혔다. 언젠가 누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사람들도 구경 많이 오고 한복을 대여해서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체험의 거리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멋진 뇌가 그 생각을 잡아 냈다. 훌륭했다. 훌륭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에 딸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딸, 전주 한옥마을 어때?"

"한옥마을? 좋아요. 친구들도 많이 다녀왔는데 좋대요. 아싸"

우리는 재빨리 외출 준비를 해서 집을 떠났다.


자가용으로 한 참을 달렸다. 드디어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는데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가? 주차장은 만차였고, 주변 도로 갓길에도 빈 틈이 없었다. 한 참을 헤매다가 주차공간을 찾았다. 먼저 한복 대여하는 곳을 찾았다. 입구 쪽에 있는 어느 대여점에 들어갔다. 깊은 생각 없이 딸의 한복만을 대여했다. 드디어 한복 입은 딸과 거리를 거닐게 되었다. 사진도 찍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딸의 한복과 나의 옷차림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색했다.

"아빠 옷이 딸의 한복과 너무 안 어울리네. 그렇지?"

딸도 인정한 듯이 아빠도 한복을 입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한복 대여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딸의 한복과 비슷한 색상의 옷이 보이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딸과 드레스 코드를 맞춰서 옷을 입었다. 그제야 딸과 생각의 키 높이를 맞춘 느낌이 들었다.

'드레스 코드까지 맞춰 준 아빠, 이제는 함께 걸어도 좋아.'

본격적으로 전주 한옥마을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가위, 바위, 보"

딸에게 대부분 완패하지만 함께 거닐 때면 항상 하는 놀이 중의 하나다. 딸은 아무 때나 "안내면 00"하면서 가위바위보를 시작하곤 한다. 그때마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흥"하고 토라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딸의 기습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생각을 낮추어야 딸과 함께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드레스코드 맞추듯이 생각코드 맞추기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고 예쁜 야경이 펼쳐졌다. 밤거리에는 임금님과 경호대장, 추억의 교복차림의 학생들 등 다양한 차림의 사람들이 모였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문화를 상징하는 옷차림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현재의 공간에서 낯선 시대의 모습을 바라보는 딸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즐거워했다.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사진에 담는 모습을 보며 오늘의 선택에 만족했다. 한복의 드레스코드를 맞춘 아빠와 딸. 잊지 못할 순간의 추억으로 남겼다.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걸었듯이 이제 생각코드도 맞추고 걸어보자.

10대와 50대의 생각의 차이가 커서 충돌이 생긴다면 또다시 드레스코드를 맞춰서 함께 거닐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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