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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Apr 26. 2021

저기요, 제 이야기는 하나도 안 궁금하세요?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서..."


A가 대화 도중 수시로 반복한 말이다. 


한국에서 잠시 알던 지인을 20여 년 만에 영국에서 재회했다. A가 아닌 그녀의 남편이 내 지인이다. 서로 잘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우연히 A의 남편이 연락을 취해오면서 만남으로 이어졌다. 


같은 동네도 아니고, 단지 영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먼 거리까지 가서 그를 만날 필요가 있나? 

오랜 세월 연락이 없고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던 사람과의 인연에 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나?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상대가 만나자고 해서 그 자리에 나간,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행동이었다. 상대가 나보다는 연장자이고, 친척과도 연관된 분이라 예의상 행동하려 했던 것 같다. 


나 혼자라면 만남을 꺼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남편과 아들까지 동행해 주었고, 약속 보다 일찍 도착하여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가족끼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서 만난 고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포를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이권 다툼으로 원수가 되는 사례를 익히 들어왔다. 


혹시나 나 또한 이런 사기 행각에 말려들거나, 하다 못해 종교나 보험 권유가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도 앞섰다.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는 친분이 없는 사람과의 만남에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런 내키지 않는 만남은 애초에 거절하는 편이 이롭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 경험이다.




모임 장소에는 우리 부부와 아들까지 3명이 나갔고, 상대는 A와 그녀의 남편까지 두 사람만 참석했다. 


약속 장소인 식당의 좁은 테이블에 앉고 보니, 내 아들은 대화 상대 없이 혼자 밥 먹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고 어른은 어른들끼리, 그것도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대화를 나누는 형국이 되었다. 즉, 내 남편과 A의 남편이 마주하고, 나와 A가 대화 상대가 되는 식이다. A의 남편과 내가 서로 연결 고리인데, 일면식도 없는 A와 마주하고 나니 이때부터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초면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애매한 태도로 나왔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혼자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집살이가 얼마나 모질고 힘들었는지로 시작해 영국 정착에 이르는 길고 긴 대서사시를 백과사전 읽어내듯 혼자 풀어나갔다. 


다들 개개인의 사정이 있기에, 해외 정착 이야기는 언제 어디 누구에게서 들어도 흥미롭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인생사를 다 읊어내는 일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상대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나자 공부 잘하는 자녀로만 화제가 귀결되었다. 두 딸 모두 영국의 유명 대학을 다니는데 '사'자 직업인이 될 자랑스러운 존재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일이구나 싶어 나도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지만 내 반응이 어떤지, 그리고 내 사정은 어떤지 A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자기 말에만 집중했다.


유난히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은 꼭 있다. 그걸 탓할 이유는 없지만, 상대 이야기도 적당히 들어주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 대화의 도리이지 않은가?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나올라치면 A는 관심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일관하다가 기회만 되면 곧바로 이야기 주도권을 빼앗아 갔다. 공부 잘하는 자식 자랑을 무한 반복하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자식 말고는 자랑할 거리가 없는 듯했다. 집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이라도 나온다 싶으면 A가 도로 쏙 집어넣곤 했으니. 남편이 학업을 마치고도 번듯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탓에 원하는 규모의 집을 사지 못하였음을 스스로 말해놓고 부끄러워하는 식이었다. 어쩌면, 그런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 공부를 잘 시켰음을 강조하기 위한 대화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방면의 주제에서 접근한다면 자식 자랑도 들어볼 만하지만, A는 별다른 특색 없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서...'를 수시로 반복할 뿐이었다.


심심하면 대화 도중 이 말이 흘러나왔다. 평소 늘 하던 말인지, 판소리 도중 추임새를 넣는 고수처럼 자연스러운 리듬까지 타는 말투였다. 나중에는 A가 어깨춤이라도 추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딸과 성격이 맞지 않아 서로 부딪힌 일, 집을 구하는 과정에 얽힌 일화, 남편의 직업 등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오면 즉시 화제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여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고것이 성격이 앙칼져서... (아차, 말실수)...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서..."


"우리 집이 좁아서... (아차, 말실수)...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서..."


어쩌다 나에게도 발언 기회가 생겼을 때 '요즘 아들과 같이 집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요...'라고 내가 운을 뗐더니...


'(아 지루해)...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서...'라며 예의 추임새로 내 말을 받아치고는 자신이 못다 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 애도 공부 잘하니까 이제 그만 좀 자랑하라고 외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억제해야 했다. 듣기 싫다고 입 다물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혼자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공부 잘하는 딸 자랑을 반복하던 A의 눈은 맞은편에 앉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독백을 하는 연극배우처럼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상대가 얼마나 지루해하고 갑갑해하는지 그 심정을 알 리 없다. 내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모를 것처럼 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자신의 독백 연기에 몰입하다가 현실로 잠시 돌아오기라도 하면, A는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지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곤 했다. 


도대체 내가 뭘 바라고 여기에 왔을까, 스스로 한탄하며 보낸 시간이다. 다 집어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옆에 앉아 심심해하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지방까지 몇 시간씩 운전해 가서는, 예정에 없던 공연을 강제로 보고 온 느낌이었다. 

재능은 전혀 없으면서 나르시시즘에 흠뻑 빠진 배우의 지루한 공연을 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하게 여겼던 만남은 계속 무의미하게 남겨두는 편이 더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저기요, 제 이야기는 하나도 안 궁금하세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KoolShooters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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