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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y 24. 2021

담배를 선물하면 친구더러 빨리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요?

영국에서 만난 초등학생이 한 말이다.


친구에게 줄 선물로 담배를 고른 아빠에게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엉뚱한 발언이라 생각하고 부모는 웃었지만, 나는 그 아이를 붙들고 "와, 너 정말 똑똑하다. 왜, 어른들은 너처럼 똑똑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라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 가족의 영국 정착을 돕기 위해 몇 개월 전부터, 나는 이메일에 답변하고 정보도 검색하고 임시 숙소까지 예약해줬다. 이들과 영국에서 만나던 날도 내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 하루 휴가를 내고 갔다. 아무도 휴가까지 내서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일이 무한정 길어질 것 같아 나 스스로 결정했다. 친구 가족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다. 일이 다 끝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들 가족이 건네는 가방을 받아 보니 담배 한 보루가 들어가 있다.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며 일을 해결해줬던 내게 선물 배달 일까지 맡긴 셈이다. 나중에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전달해 달란다. 




해외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다. 건강을 위해 금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만, 한국보다 비싼 담배 가격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한 금연이지만, 오랜 세월 유지해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끊기는 어렵다. 결국,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담배를 사거나 출국하는 이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지출을 줄이는 쪽이 된다. 출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저렴한 담배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담배 선물이 불편하다.


몇 개월간 신경 써준 나에게 선물 하나 챙겨주지 않은 가족의 태도가 섭섭해서가 아니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 선물 받고 기분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담배를 주는 행위 자체가 불편하다.  


주변 사람들은 "남편에게 담배 끊으라고 안 해요?"라고 나를 책망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남편에게 담배 선물을 한다. 이래저래 흡연자의 가족으로 사는 건 피곤하다.


남편이 금연을 시도하는 기간에 담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횟수도 남편의 금연 실패 횟수와 거의 일치한다. 누군가 출장 오면서 영국에 사는 친구에게 선물하는 식이다. 남편이 아직도 담배를 피우겠거니 짐작했으리라. 금연 한 달째가 문제다. 이 고비를 넘기기 전에 금연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남편은 한탄했다. 반드시 끊겠다는 의지도 없이,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이 문제지, 누가 방해를 한단 말인가. 남편의 금연 실패는 주변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10년 동안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남편에게 99%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1% 책임을 담배 선물을 준 사람에 돌리고픈 심정이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시련이 닥쳤지만, 긍정적 변화도 있다. 바로, 남편이 이 시기에 담배를 끊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굳은 의지로 해냈다고 본인은 자부하겠지만, 나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도와준 업적이라고 본다. 집콕 생활과 재택근무까지 하면서, 상점 출입은 남편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1년 내내 가족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담배 사러 가는 일은 점점 귀찮아지고, 당연히 담배 선물을 해줄 사람도 없다. 한 달이라는 위기의 시간은 물론 1년 내내 외부 자극 요소가 없었다.


흡연자라는 이유만으로 친구에게 담배를 선물해야 할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흡연자의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해외에 사는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 담배 말고 없을까? 앞서 인용한 초등학생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담배를 선물하면 친구더러 빨리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요?"



커버 이미지: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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