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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Apr 19. 2022

러브, 메이트라 불러준다고 착각하면 안돼요

"영국에 온 지 12시간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모두가 날 사랑하나 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한국어판의 실제 번역문은 이와 다를 수 있다). 미국 출신 여행 작가인 그가 영국에 첫 발을 디딘 날, 처음 보는 자신을 향해 여자는 '러브', 남자는 '메이트'라고 불러줬다고 한다. 작가의 유쾌한 유머가 접목된 책으로 영국에서의 경험을 재밌게 그려냈다.  


Love

* 상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영국 영어)


배우자나 연인, 가족 등 가까운 사이에서만 쓸 것 같은 단어임에도, 영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건넨다.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빌 브라이슨처럼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인마저 생소하게 느끼는 단어다.



이런 단어를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장소에 들어가 보자 (위 작가도 동일한 장소에서 경험했다).



"헬로우 루브, 뭘로 드릴까요?"


술집에서 주문을 받던 노신사가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귀여운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목소리다. 루브는 뭐지? 싶은데 일부 영국인들은 Love를 러브가 아닌 루브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헬로우 러브, 뭘로 드릴까요?"


이번에는 드라마 장면이다. 짙은 화장의 여성이 남성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위 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발음은 약간 다르지만 언어는 동일하다. 


'Hello love, what can I get you?' 


바텐더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고, 또 더 젊어지고, 고객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아까 할아버지 바텐더는 20대이던 나를 어린 손녀 대하듯 하는데 이번 여성 바텐더는 남성 고객을 연인 대하듯 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깊게 파인 상의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가슴골마저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된다. 내가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될 무렵이라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드라마 전개 상황과도 전혀 맞지 않다. 일부 보수적인 장소를 제외하고 가슴골이 드러나는 여성의 옷차림은 영국에서 흔하다. 이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브이넥임에도 영국에서 쇼핑할 때 망설여지는 옷이기도 하다. 



"헬로우 메이트, 뭘로 드릴까요?"


'Hello mate, what can I get you?' 


동일한 장소지만 이번에는 남성 대 남성이다. 드라마 장면인지 실제 목격한 장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표현이기에 그 출처가 헷갈리는 것도 당연하다. 술집이나 카페에서 벌이지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내 앞에 서있던 남성 고객을 향해 직원이 한 말일 수도 있고 내 옆에서 주문을 하던 남편에게 건넨 말일 수도 있다. 다정한 호칭으로 상대를 불러주는 영국인이라도 남자들끼리는 특히 낯선 이에게는 Love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Mate라고 한다. 이 단어의 영국식 의미를 모른다면 이 또한 당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Mate

* 친구 (영국 영어)

* 성관계 파트너




영국에서는 거리를 오가다 눈이 마주치면 낯선 사람이라도 인사를 건넨다. Good morning이나 Good afternoon. 간혹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고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오해한다고 해서 인종 차별로 보는 건 무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낯선 이와 인사를 나누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둘 사이에 대화가 더 이어지면 러브나 달링, 허니까지 붙이기도 한다.


Darling, Honey (혹은 Hon)

* 여보, 자기


수백 명이 근무하는 회사의 복도를 오가다 마주친, 이름도 모르는 다른 부서 직원을 대할 때,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담당자를 대할 때도 러브, 달링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대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다 생각할 수 있다.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부르는 이들이 자주 하는 소리이니 이를 엉뚱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ndrea Piacquadio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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