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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l 14. 2022

영국에서 이 경고를 무시하면, 곤란해질 수 있어요

"교장선생님, 제이미의 옷과 손에 묻은 페인트를 어떻게 지워야 하나요?"


"아, 제이미가 지난번에 학교 벽을 타다가 페인트를 묻힌 학생이군요. 그걸 어떻게 지우느냐면 말이죠..."


아들이 운동장에서 들은 어른들의 대화 내용이다. 도대체 제이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위 사연을 이해하려면 배경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영국의 주택가나 거리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경고판이 있다.


Strom Carlson (Wikipedia).......flickr.com                                      


Anti Climb Paint, 즉 '월담 방지 페인트'라고 쓰인 경고판이다. 


외부에서 담을 넘거나 배관, 철제문 등을 타고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칠하는 셈이다. 주택이나 학교, 기업체의 담장과 배관, 건물 입구에 주로 사용한다.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페인트라니, 거기에 손을 대면 미끄러지거나 따끔거리기라도 하나? 아니면 전기를 통하게 해서 아예 손을 못 대게 하나? 아니, 그건 아니지.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에도, 행인들로 붐비는 거리에서도 봤는데, 그런 위험한 장치까지는 아닐 거라고만 짐작했다. 겉으로는 일반 페인트 칠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직접 만져 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남의 담장에 기어오를 일도 없고, 경고문 하나만으로도 가까이 갈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무렵 나의 의문이 풀렸다. 바로, 글 첫머리에 나오는 대화 내용을 아들이 내게 전해주면서 말이다.



                          sacramento-home.com........................amazon.co.uk


원료에 포함된 불건성유 (不乾性油) 때문에 페인트를 벽에 칠해도 마르지 않는다. 손에 묻으면 끈적거리고 묻은 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담을 넘어 들어온 범인이 도주하더라도 단서를 남기기 마련이다. 기름이 들어갔으니 미끈거리는 성질 때문에 기어오르기도 쉽지 않다. 보안이나 안전의 목적에서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페인트를 사용한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입구 담벼락과 운동장 옆 전기 관련 시설에 이 경고문이 있었다. 


나무나 벽을 타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이런 페인트 칠을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학교 시설도 보호하려는 방침이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벽에 기대거나 타고 올라갔다가는 옷에 자국을 남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주의를 시켜도 안 되는 문제가 있다. 




                       change.org...........thespruce.com


바로 애완동물이다. 


위 왼쪽 사진은 <정원 담장에다 Anti Climb Paint 사용을 금지시키자>는 청원이 담긴 웹사이트에서 가져왔다. 고양이가 옆집 담벼락을 타다가 이 페인트를 묻혀왔다는 사연이 담겨 있다. 고양이 몸은 물론 집 내부까지 페인트가 묻었다고 한다. 몸의 청결을 유지하려는 고양이 습성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얼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결국 이 고양이 주인은 병원에서 거액의 돈을 내고 얼룩을 제거했다고 한다. 


정원 딸린 주택이 많은 영국에는 담장이 이웃과 연결되는 형태가 흔하다. 이런 환경에서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특히 정원 담장이 주요 활동 무대다. 담장을 타고 다니다가 이런 페인트가 칠해진 곳을 지난다면 위 사진의 고양이가 겪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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