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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22. 2024

벤 존슨과 칼 루이스를 제치는 아줌마/아저씨보다 빨라?

영국에서 지하철을 타다가 발견한 사실

- 예전 글을 새롭게 다듬어 올립니다 -


“XX아, 왼쪽 뛰어!”   


남편이 아들에게 외치는 소리다.


우리가 탈 지하철이 막 승강장에 들어서려 할 때다. 승차문이 열리기도 전 이미 지하철 내부 상태를 파악한 남편이 아들을 시켜 재빨리 좌석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이럴 때면 아들은 신이 나서 아빠의 지령을 따른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이 남자들의 행동만으로도 의도가 노출되지 않겠나. 더군다나 작은 외침으로도 크게 울려 퍼지는 구조인 지하철 승강장에서 말이다. 뭐라 말릴 틈도 없던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이들과 멀찍이 떨어져 갈까 했지만,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금방 탄로 나고 말테다. 


아빠가 하는 일이면 뭐든 '옳소'하고 나오는 아들은 그렇다 치고, 남편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 글의 제목처럼, 나는 한때 유행하던 버스와 지하철을 배경으로 하는 우스개 소리의 주인공이 대부분 아줌마라고만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 나도 당당히 아줌마 대열에 들어서놓고 무슨 뻔뻔한 소린가 싶겠지만, 적어도 남편의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순발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부터 '달리기 잘하겠다', '운동 잘하겠다' 소리를 실컷 들어왔지만, 내 실력은 그런 기대에 절대 못 미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달리기는 물론 온갖 운동 대회마다, '저 진짜 운동 못해요'라고 항변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대표 선수로 뽑혀나갔다. 심지어, 교생 실습을 하러 간 고등학교에서마저 교사 대표로 뽑히고 회사 야유회에서 열린 시합에도 불려 나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오히려 내가 자발적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은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대표적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면, 으레 자리 경쟁에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서서 가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다행히 지구력 하나는 끝내주거든. 나처럼 부실한 순발력에 뛰어난 지구력을 지닌 사람은 다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 출퇴근 시간에 나보다 더 피곤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이것도 운동이다 생각하고 서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 귀가하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안락한 순간을 보내고자 하는 욕구를 무시해서도 안 되니까.


남편은 나와는 전혀 다르다. 


다른 남성에 비해 순발력이 더 뛰어난지 가늠할 기회는 없었지만 적어도 대중교통이나 식당에서의 자리 확보 속도만큼은 누구보다 안 뒤진다. 



수년 전 아들의 방학을 기념하여 가족 모두가 런던을 여행할 때다.


그날 일정을 다 끝내고 숙소로 향하는 시간이 하필 승객들로 붐빌 퇴근 시간이었다. 예전처럼, 유모차를 싣느라 바쁜 직장인들에게 방해가 될까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어린 아들이 다른 승객의 몸놀림에 걸림돌이 될까, 아니면 승강장과 열차 사이 넓은 틈 사이로 애가 빠지지 않을까 염려할 시기는 지났기에 승객이 많다고 신경 쓸 일은 이제 없겠거니 했다.  


하지만, 나만 신경 쓰지 않는 거였다. 남편은 어떻게 하면 지하철에서 편하게 앉아 갈 수 있을까, 를 열차가 들어서기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그다지 혼잡해 보이지도 않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확보했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해하는 두 남자를 보라.





남편이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만 해도 종점에 가까운 동네에 사는 덕택에 늘 한산한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통근버스로 나중에는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했으니, 지옥철과 만원 버스를 전혀 모르고 산 셈이다. 나와는 딴판이다.


그런 사람이 어쩜 그리도 지하철 자리 확보에 민감한지, 또 어찌나 빨리 뛰어가 자리를 잡는지, 민망할 정도로 신기했다. 그런 아빠의 능청스러운 지령을 받고도 충실히 자리를 대령하는 중학생 아들은 더 신기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목표물 발견 즉시 가방부터 던지는 진정한 지하철 날쌘 아줌마/아저씨의 신공을 모른다는 점이다.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다행이다).  


우리 세 사람은 가족끼리의 친밀한 대화를 집 밖에서도 자연스럽게 나누는 편이다. 주변에 우리 말을 알아들을 이가 거의 없는 환경에 살며 생긴 습관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엿들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만한 내용도 아니요, 미성년 아들이 듣기에 부적절할 말도 아니다. 다만,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들려주기 민망한 주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쇼핑을 마친 후 카페에서 휴식을 취할 때다. 세 명의 아이가 창가 쪽 테이블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DIY 상점에 딸린 카페라 해당 테이블을 작업대로 쓰는 사람도 있고 의자로 쓰는 사람, 음식을 놓는 사람 등 용도가 불분명한 자리였다.


작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고 행복해하는 꼬마들의 귀여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갑자기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개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은?"

"꼬리를 흔들지요."

"그럼, 사람 꼬마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은?"

"사람 꼬마요?"


나의 생뚱맞은 질문에 아들은 당황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를 돌아보라는 내 눈짓에 아들이 몸을 돌렸을 때 창가 쪽 풍경이 눈에 들어왔으리라.


"아... ㅋㅋ... 다리를 흔들지요."


이런 대화는 쇼핑을 하다가도 공원을 산책하다가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남편이 지하철역에서 빨리 달려가 자리를 잡으라고 아들에게 당당히 외친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 

그런데...

런던은 우리 동네랑 다르다고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Mediocre Stud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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