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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28. 2024

영국에 살면서 가지게 된 옷차림에 대한 이중적 태도

한밤중에 까무러치듯 우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다. 


이른 새벽, 대기실을 꽉 채운 사람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우는 애를 달래며 오랜 시간 버틴 끝에 겨우 진료실에 들어섰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아들의 병은 평범한 감기요, 해열제를 먹인 뒤 안정만 취하면 된다고 했다. 다행이다 싶어 이제 처방전만 받고 병원을 나서면 되겠지 했는데, 의사가 뭉그적거렸다. 


원칙대로라면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야 하지만, 아직 깜깜한 새벽이라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약을 구할 수 있다. 이를 알고 있어서인지 의사가 어린이용 해열제를 꺼내줬다.  


병원 진료도 무료고 미성년자의 경우 처방전 약마저 무료이긴 하다만, 이런 식으로 약까지 주는 건 의사의 월권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환자 가족 입장에서 이런 배려를 마다할 일이 아니니, 의사가 재량껏 하는 행위로 치부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 쉬는 일만 남았구나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저도 감기 때문에 몸이 아픈데, 곧 면접을 보러 가거든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들 때문에 병원에 들러놓고 남편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나섰다. 


환자 당사자의 문제 한 가지만 놓고 상담하는 것이 병원 진료의 원칙이다. 두 가지 병을 동시에 앓는다 해도 한 차례 상담에는 한 가지 병에 대해서만 문의해야 한다. 아들을 위해 할 일을 끝낸 의사 앞에서 남편이 자기 문제까지 털어놓다니.  


눈에서 갑자기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의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 해열제를 꺼내던 서랍장을 열어 다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면접 보러 가야 하니 빨리 감기 나아야지, 그지?"


약을 쥔 의사의 손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눈은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여운 손자를 대하듯.


아기 해열제를 약국이 아닌 병원에서 받는 건 이해한다 치더라도,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할 성인 감기약까지 병원에서 받다니. 아들 병을 고치러 왔다가 자기 병마저 덩달아 해결하는구나 싶어 남편은 싱글벙글이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은 뭐라 표현하지 못할, 또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무안함과 짜증으로 가득했다.


아픈 아이를 안고 한밤중에 집을 나서는 부모가 외모에 신경 쓸 틈은 없다만, 남편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며칠째 감기에 시달리느라 초췌해진 몰골은 말할 것도 없고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은 덥수룩하고 세수도 안 하고 모자만 눌러쓴 상태요, 옷도 아무거나 걸치고 왔다. 


의사가 보인 선행은 몸에 밴 친절일 수도 있지만, 취업에 실패한 백수 가장과 사느라 약값을 감당 못하는 가족에게 쏟는 동정이 아닐까.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로 말이다.


남편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던 중 연락 온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이 확정된 건 아니니 백수는 백수라 할 수 있지만 약값을 못 낼 형편은 아니었다.




영국에 살면서 옷차림에 대한 내 태도가 달라졌다. 외국인으로 누리는 익명성도 한몫하지만, 영국이라는 환경과 이곳 사람특성에서 받은 영향도 있다.



"뭐야, 지퍼가 열려 있잖아. 왜 아무도 말 안 해줬어?"


내가 원망하듯 따져 물었다.


동네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고개를 돌렸더니 남의 거실 창문에  옆구리 속살이 훤히 비치는 것이 아닌가.


입고 있던 원피스 옆구리에는 한 뼘 정도 길이의 지퍼가 달려 있었다. 옷을 입을 때 여기를 열어두어 편하게 착용하도록 하는 목적이지만, 내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 머리만 집어넣으면 훌러덩 들어갈 정도로 치수가 큰 옷이라. 


지퍼가 있는지도 모르다가 우연히 발견한 순간 '이제부터 제대로 옷을 입어보자' 마음먹어놓고 열어둔 사실을 깜박한 셈이다.


이날 산책만 하다가 이런 사태에 이른 것도 아니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슈퍼마켓에도 들렀다. 집과 학교, 슈퍼마켓, 다시 집으로 향하는 삼각형의 동선을 따라 장장 두 시간여를 걸었으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속살을 봤을까, 아찔했다. 


방과 거실, 부엌을 오가는 내 모습을 보고도 남편과 아들은 왜 말을 안 했을까? 따져 물었더니, 지퍼가 열렸는지 몰랐다억울해했다. 바지 지퍼도 아니고 겨드랑이 밑에 위치한 지퍼를, 그것도 여자 옷을 어떻게 아느냐고 말이다. 


그럼, 오가는 길에 마주친 여자들은 알지 않았을까?  


내가 경험한 영국인은 주변 사람의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듯했다. 옆구리가 뚫려 있는 걸 일종의 패션이라 여길지도 모르고, 좀 이상하다 싶어도 좀처럼 지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주변 분위기 덕택에, 나는 옷차림에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집에서 편하게 걸치고 다니는 옷차림 그대로 외출할 때도 있고 해변에서나 어울릴 듯 상체의 맨살이 훤히 드러나는 끈 원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아들 학교에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옷차림에 신경 써야겠다 싶은 순간도 있다.



"싸구려 물품 산다고 싸구려 취급한 건지, 아니면 아시아계라고 무시한 건가요?"


위 문구를 강조하기 위해 크고 굵은 글자체에다 밑줄까지 쳤다. 읽는 사람이 정신 바싹 차렸으면 하는 의도로.


저녁을 먹은 후 습관처럼 장을 보러 다니던 때다. 저녁 7시 전후에 마트에 가보면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은 제품을 할인하곤 했다. 한국의 마트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떨이요, 떨이!'라며 외치는 정겨운 소리가 없을 뿐이다. 


멀쩡하게 생긴 과일과 야채를 반값에 팔거나 어떤 때는 90% 파격 할인도 하길래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처음에는 식비를 아낀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저녁 장보기인데 점점 저렴한 물건을 고르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할인 품목의 다채로움도 빼놓을 수 없다. 여지와 파파야, 구스베리, 오크라, 스웨덴 순무, 미니양배추까지, 낯선 과일과 야채를 무작정 사들고 와서 식용법을 궁리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런 내 취미생활을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할인 제품임을 알리는 노란 스티커가 붙은 과일과 야채에 이어 다른 생필품과 아들의 기저귀까지 수레에 잔뜩 담아 계산대에 갔을 때다. 


셀프계산대가 없던 시절이라 계산대마다 길게 줄이 이어지는데, 내가 서있던 계산대의 직원은 이런 와중에도 만나는 손님마다 일일이 대화를 걸려고 했다. 


내 바로 앞에 서있던 손님이 결제를 마치는 순간에도 직원의 수다는 나지 않았고, 심지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이와의 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몸은 그쪽으로 향했다. 나라는 존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기다림이 길어지니 짜증은 났지만, 나에게도 이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겠지 기대는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정하기는커녕 내 차례가 되어도 인사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봉투에 담는 걸 도와드릴까요?"


직원이 계산을 끝낼 무렵 형식적으로 하는 질문이다.


평소 이런 제안을 받으면 대부분 사양했지만, 이날만큼은 구매한 물품도 많고 쇼핑한 시간 못지않게 오래 기다리느라 몸과 마음도 지치고 아들까지 칭얼대길래 도움을 요청했다. 순간, 직원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표정만 보고 상대 의중을 지레짐작해서는 안 되지만, 내 앞을 스쳐간 다른 손님을 대하던 태도와는 딴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순전히 나의 오해겠지, 라며 꾹꾹 눌러 참았지만 곧이어 나의 인내심이 한계를 맞이하고 말았다.


계산대 직원의 요청으로 달려온 다른 직원이 내가 산 물품을 하나씩 봉투에 담고 있을 때다.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물건을 저쪽으로 옮기시죠?"


잘못 들었나 싶어 돌아봤더니, 아까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로 계산대 직원이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여전히 나와 눈 마주치는 일은 거부한 채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느라 도움을 요청한 것도 모르나?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이건 명백히 나를 공격하는 말이렷다. 

당장 직원에게 불평을 해볼까?


직원에게 찬찬히 따져가며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다만, 말 그대로 '찬찬히'다. 이처럼 내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차분하게 의사를 표현할 자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들이 언제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고, 내 뒤로 길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더욱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온갖 조롱과 괄시를 받으며 쫓겨나는 패잔병처럼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음 날, 마트 본사 CEO 앞으로 편지를 썼다. 앞서 언급한 '싸구려'라는 단어가 담긴 편지다. 전날 받은 영수증 사본도 첨부했으니 어느 지점, 어느 직원을 탓하는지 알리라. 


계산대 직원이 나를 홀대한 건 나의 옷차림이나 저렴한 쇼핑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인종 때문인지 이유는 모른다. 이건 내가 아닌, 내 편지를 읽을 마트 CEO나 지점장이 추궁할 일이다.




병원과 마트에서의 일을 경험한 뒤 옷차림에 대한 내 태도가 변했다.


뭘 걸치고 다녀도 주변 사람이 신경 안 쓰는 곳이니 자유롭게 다니겠다, 와

나의 능력이나 경제력을 오해받지 않을 만큼 옷차림에 신경 써야겠다


의 상충되는 태도 말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옷차림에 신경 쓰는 일만으로도 피곤하지만,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홀대하는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서도 안 되리라. 그럼에도, 겉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로부터 동정이나 경멸은 받고 싶지 않아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ariana Kurnyk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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