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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08. 2024

야외에서 당나귀를 구경하다가

"쟤네들 뭐 먹을 거 있나 싶어 기웃거리는데 어떡하지?"


가족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다.


당나귀 세 마리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무턱대고 우리에게 머리부터 들이댔다.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자세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짐짓 모른척하고 버텼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도 있지만, 잠시 산책하러 나온 터라 챙겨 온 먹거리도 없었다.  


당나귀가 사람에게 머리를 들이대다니 상당히 폭력적인 상황이 아닐까 염려할 수도 있다. 그림책과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만 보던 동물이라 이곳 공원에 와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당나귀가 말보다 조금 작으리라 막연하게 짐작했다.




 




실제 가까이에서 보니 딱 이 정도 크기+α였다.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본 송아지보다 더 작은 느낌이었다. 어미 곁을 절대 떠나려 하지 않는 그런 어린 송아지 말고, 코뚜레도 아직 달지 않고 한 곳에 묶어놓지도 않아 이리저리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송아지 말이다. 문턱이 낮은 사랑방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쫓아내어 어미소가 있는 외양간으로 밀어 넣어야 했던 녀석이다.


우리가 공원에서 본 당나귀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안 무서워할 정도로 덩치도 작고 성질이 온순하여 주택가와 상가, 심지어 도로변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얌전히 시간을 보내는 놈도 있지만 사람이 보인다 싶으면 무작정 다가와 장난을 걸기도 한다. 특히, 음식을 펼쳐놓고 있으면 곁에 다가와 자기도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기도 하고 그냥 뺏어가기도 한다. 무작정 어린아이를 쫓아다니기도 한다. 




"저기... 당나귀 선생님... 남의 집 담장을 뜯고 계신데요..."


당나귀와 조랑말, 소를 방목하는 근처 국립공원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도토리와 밤이 수두룩하게 떨어지는 계절에는 이를 먹어치울 돼지들이 잠시 방목되기도 한다. 돼지에게는 천연 사료가 되지만 말과 소에게는 독이 되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를 찍은 건지, 우리 모자를 찍은 건지 모를 사진이지만, 하여간... 아들이 나보다 훌쩍 커진 최근까지도 우리는 당나귀를 구경하려 다녔다.



"푸하하..."

"Oh gosh #+%^...."


다시 아까 공원 벤치로 돌아가자. 


아들이, 앞니가 빠진 상태에서 당나귀에게 쫓기던 시절보다는 쬐끔 더 성장하고, 키다리 엄마보다는 한참 작을 무렵이다.


우리 가족과의 협상에 실패한 당나귀 일행은 옆자리 가족으로 자리를 옮겨가더니 이번에도 머리 들이밀기 수법을 썼다. 그러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모든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이런 비협조적인 인간이 아니더라도 공원 곳곳에 자리를 차지한 가족이 하나씩 시야에 들어오니 어디든 들르면 뭐라도 하나 건질 있으리라.


아... 

그런데...

세 마리가 얌전히 자리를 옮기는가 싶더니 제일 오른쪽에 있던 당나귀가 돌발 행동을 했다.

옆에 있는 당나귀를 갑자기 올라타는 것 아닌가.


헉...


세 마리 모두 덩치와 생김새가 비슷해서 형제나 자매라 여겼는데 그중 암수가 섞여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수컷이 덩치가 더 크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아직 어린 새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몸뚱이 어디에도 암수를 구분할 만한 특징이 안 보였는데, 옆 당나귀를 올라타는 순간 무지막지하게 물건을 드러내 보였다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우리 가족끼리였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옆에 있던 가족과 서로 눈이 마주쳐 무안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본능에 충실하려는 동물의 낯 뜨거운 행동을 낯선 사람과 함께 지켜보는 일도 곤욕스럽지만 이들은 우리 가족의 눈치를 더 보는 듯했다. 어린 아들이 옆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쳐다 보지 마소, 우리도 무안하오. 그쪽 아들도 그리 큰 것 같지는 않고만."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뭔 상관이가 싶어 그냥 마주 보며 웃었다. 


수컷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암컷 당나귀는 이를 가볍게 떨쳐내고 가던 길로 계속 향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사건 전개라 벤치에 앉은 두 가족의 웃음보가 또 한 차례 터졌다.



"예전에 당나귀가 다른 당나귀 올라타는 거 보고 크게 웃었던 일 기억나니?"


세월이 조금 더 지나고 예전 일을 회상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부모 자식 간에 나눌 대화 주제로는 조금 어색하지만 아들이 당시 읽던 한글 학습만화 시리즈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동물과 곤충 편에서 짝짓기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나오곤 했다. 아들의 한글 공부를 위해,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이라면 내용 따지지 않고 권하던 때다.


그런 아들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당나귀가 장난치니까 귀찮아서 도망간 거 아닌가요?"


아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그토록 궁금해하던 동물의 짝짓기 현장을 생중계로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 셈이다. 단순히 동물끼리 장난치는 거라 생각했다니.


"앗... 아들아... 그때 그 당나귀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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