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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Feb 23. 2024

자꾸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다

어... 

저기...

거... 있잖아...

그 소스... 뭐더라...

마두... 어...



어... 맞다... 마다가스카르, 그거 좀 갖다 줄래? 



마다가스카르? 

소스? 

그게 뭐냐고? 


내가 요구한 아프리카위치한 섬나라나 애니메이션 영화와 무관하다. 



pataks.ca



↑ 인도에 있는 도시의 옛 지명이기도 하지만, 인도식 카레를 가리키기도 한다. 


'마드라스'가 왜 갑자기 '마다가스카라'로 튀어나왔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언어 수용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나의 어설픈 이론을 들이대면 억지 설명은 가능하다.


영국의 마트 진열대를 샅샅이 탐험하고...

인도 요리 전문점을 가보고...

첸나이 (마드라스의 현 명칭) 출신 인도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 살아보고 나서야... 


내게 마드라스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영화 <마다가스카>를 보고, 그 후속작까지 다 섭렵하고도 훨씬 지나서의 일이다.


마다가스카 혹은 마다가스카르라는 단어도 그리 쉽게 내 뇌리에 박힌 건 아니지만, 이미 이 명칭이 익숙해질 무렵 접하게 된 마드라스는,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지 않고는 내 입에서 저절로 나오지 않는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 집은 위 사진의 마드라스처럼 유리병에 담긴 소스를 종류별로 구비해 두곤 했다. 주로 인도와 중국, 이탈리아식 요리를 할 수 있는 소스다. 고기와 야채를 볶고 여기에 소스를 부어서 졸인 뒤 밥이나 파스타에 곁들이기만 하면 된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 위주로 식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내게 친근한 한식이라 해도 조금씩 변형된 요리를 해왔고, 낯선 동서양 요리도 조금씩 시도해 봤다. 덕분에 생소한 식재료 이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나라 음식이든 대부분 거리낌 없이 잘 먹는 편이지만 그 요리 이름이나 식재료를 외워야 하는 수고는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어디 마드라스뿐이랴.


에그 베네딕트는 또 어떤가.


Photo by John Baker on Unsplash


↑ 빵 위에 수란과 고기, 소스를 얹어서 만드는 요리로 주로 아침 식사로 먹는다.


이 이름을 왜 헷갈려하냐고? 


그 이유는 내가 영국에 살기에 겪는 언어 혼란이라 주장하고 싶다. 영국 출신 배우 중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있지 않은가. 


영국식 이름 치고는 어렵기에 배우로 활동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싶어 본인이 개명을 고민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독특한 이름이 배우 이미지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그대로 썼다고 한다. 덕분에 나 같은 팬이 얼마나 잘 기억해 주는가. 그 이름과 비슷한 요리를 말하려면 반드시 그의 이름을 거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긴 했어도 말이다.



"주말에 브런치 먹으러 갈까? 난 베네딕트 컴버배치, 아니 아니... 어... 에그 베네딕트 먹을 건데..."


이렇게 엉뚱하게 이름을 부르는 건 우리 집에서 자주 벌어지는 풍경이다.


주로 내가 이런 언어 혼란의 장을 주도하고 있기에 가족들에게 심하게 놀림을 당하지만, 가족도 한몫한다.



"볼로네즈, 초핑, 모차렐라..."


요리책은 아니고, 아들이 피아노 악보를 보던 중이었다. 


악보를 몇 장 건네주고 그중에 연주할 만한 곡을 골라보라 했더니 초딩 아들이 이렇게 읽어 댄 것이다.





참... 

셔벗의 '송어'도 있었지.



"이건 잡채가 아니고 '찜닭에 당면사리 추가', 라니까!"


해외에 산다는 이유로 익혀야만 했던 생소한 용어와 다른 용어가 충돌할 때 겪는 언어 혼란도 있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언어를 창조할 때도 있다. 이 또한 영국에 살기에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이번에도 음식명이다.


내가 가족 앞에 자신 있게 내놓는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인 '찜닭에 당면사리 추가'가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이 요리의 탄생은 안동찜닭이 시초다. 


늘 그렇듯, 어떤 음식이든 주변에서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만 활용한다는 내 요리 철학 때문에 안동찜닭 레시피를 보고 탄생시킨 내 요리는 안동찜닭이 아닌 다른 이상한 무언가였다. 그럼에도 이를 먹어본 우리 집 남자들이 내 솜씨를 칭찬하는 것이 아닌가. 


칭찬한다고 해서 솜씨가 그리 대단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은 정통 한식을 맛본 경험이 미미하니 내가 해주는 한식이 제대로 된 건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고 학교와 군대, 직장생활까지 한 남편은 사정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내가 떡볶이나 육개장 등 익숙한 한식을 하면 한 번씩 훈수를 두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조차 '안동찜닭' 만큼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영국에 올 무렵 본격적으로 한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음식이니 그 맛을 제대로 알 리 없다. 아마 이 때문에 내가 자신 있게 가족 앞에 펼쳐 보이고 칭찬받는 것이리라. 


아무리 특정 요리법을 참조해 만들었다 해도, 또 가족이 먹어보고 만족하는 요리라 해도 원본과는 동떨어진 결과물을 두고 동일한 이름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민하던 중 '찜닭에 당면사리 추가'라 붙이게 되었다. 


찜닭이면 찜닭, 당면이면 당면으로 밀고 나갈 갈 것이지 굳이 두 단어를 다 집어넣어 괴상한 이름으로 만든 이유는? 


영국의 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에 나오는 방식으로 이름을 지어보겠다는 야심에서 시작했건만 한국식으로 옮기니 이렇게 돼버렸다. 이런 이름을 거부하는 남편은 잡채라 부르고, 내가 지은 이름을 인정해 주는 아들조차 '찜닭'이라고도 하다가 '닭찜'이라고도 한다. 아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긴 한글 요리명을 외우지 못해서다.


해외에 살면서 고국 음식을 현지 사정에 맞게 변형해 만들어 먹는 풍습이 우리 집 말고도 훨씬 이전부터 있었나 보다.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이 만든 당근 김치가 그렇고, 

미국 남부에 사는 스페인과 프랑스인이 만든 잠발라야 (Jambalaya), 

영국의 인도인이 만든 치킨 티카 마살라 (Chicken Tikka Masala)까지...


그나저나 내가 만든 '찜닭에 당면사리 추가'를 요리명으로 정착시키기에는 부적절하니 간편한 이름으로 바꾸자고 아들이 자꾸 부추기는데, 내 요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그런 고민은 안 하련다.




내가 엉터리 이름으로 부르는 건 먹거리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도 다양하다.




"정원에 크로커다일 핀 거 봤어?"


Photo by Marc Schulte on Unsplash


Crocus

* 크로커스





"지금 조지 오웰의 <동물의 왕국> 읽고 있는데..."


Photo by Shraddha Agrawal on Unsplash





"아드보카도(???) 껍질 좀 벗겨줄래요?"


Photo by Eddie Pipocas on Unsplash....................soccer.ru                                     


딕 아드보카트 (Dick Advocaat)

*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커버 이미지: Photo by Ainur I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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