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다가오는 여름방학 동안 자신이 할 공부라며 거창하게 계획표를 내놓은 아들이다.
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내가 기억하는 방학계획표와 사뭇 다르긴 하지만,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드러내는 아들의 표정만큼은 나의 유년 시절과 유사했다. 밤새 머리를 굴려 짜낸 아이디어를 종이에다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채워 넣은 뒤 선생님께 검사받을 때만큼은,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선생님 저 너무 대견하지 않은가요?'라며 나도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나오는 건, 지난 학기 동안 자신이 학교에서 따랐던 수업시간표를 참조해 만든 계획표라는 사실도 작용했다. 교육 전문가가 나서서 학생이 이만큼 공부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과목별 수업 분량을 집에서 그대로 이어가겠다고 하니,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그동안 방학계획표를 실천해 온 이력을 따져 봐도 아들의 자신감에는 전혀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다.
방학 동안 경험했던 일 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례를 일기 형식으로 적어내는 방학 숙제를, 아들은 방학 내내 평소 일기 쓰듯 매일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하기까지 했다. 결국, A4 용지 몇 장으로 해결 가능한 과제가 제법 두터운 대학 노트 한 권으로 마무리되었다. 말 그대로 '계획'으로 시작한 일이요, 이를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말이다. 방학 숙제도 강제성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급우들 중 누구보다 더 열심히 숙제를 하며 방학을 보낸 아이다.
이번에도 굳건한 실천 의지가 엿보이는 계획표이니, 아들이 내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얼마 전 학교에서 받아 온 아들의 성적표를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중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이과 성향을 강하게 보이던 아들은, 수학과 과학의 경우 이미 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로 관심을 보인 덕택에 안정적으로 상위권 성적을 받고 있었다. 이에 반해, 영어와 프랑스어는 상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상위권으로 오르고, 그러고도 또 언제 성적이 하락할지 모르는 등 안정을 찾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국에서 국영수 과목을 중요시한다면, 영국에서는 영국식 국영수에 해당하는 영어, 외국어, 수학에 이어 과학까지 강조한다.
그런데, 학교 수업과 과제 제출, 시험 횟수까지 실제 고려해 보면 여전히 영국식 '국영수'인 영어와 외국어, 수학 과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학은 생물과 물리, 화학의 세 과목을 '과학'이라는 기둥으로 묶어서이지, 이를 개별 과목으로 취급하고 보면 앞서 말한 세 과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중요도가 높은 3개 과목 중 2개의 성적이 들쭉날쭉한 상태에서, 학교 수업시간표 대로만 공부하겠다고 하니 안타깝지 않은가.
학기 중에는 과제 제출과 발표, 퀴즈를 통해 학생의 실력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기회가 제공되지만 방학에는 이런 보호 장치가 사라지고 만다. 장장 6주나 지속되는 여름방학에 말이다.
내가 요구한 사항은, 영어와 수학처럼 중요도가 높은 과목은 일주일에 3시간이 아니라 매일 한 시간씩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차마, 프랑스어까지 매일 하라고 강요하지는 못했지만.
참, 여기서 '한 시간 공부'라는 말은 물리적으로 한 시간을 소비하는 건 아니다. 학교 시간표를 참조하여 만든 계획표라 하더라도 실제 수업을 받는 것처럼, 아들이 방학 동안에도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공부에만 몰두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처럼, 이 계획표에 있는 시간은 하나의 단위라 할 수 있다. 과목별로 하루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 즉 아들의 경우 문제집을 한 번에 푸는 분량에 해당하니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루에 최대 다섯 과목을 공부한다 해도 두 시간 반이면 끝나는 셈이다. 다른 집 아이 같으면 학원 두어 곳 다녀오는 시간에 불과한데, 아들은 학원도 가지 않고 과외도 받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계획표에 딴죽을 걸었다는 이유로 아들은 잔뜩 언짢아했지만 내가 던진 말에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기세가 수그러든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마지막 설득만 하면 되겠다 싶을 때였다.
갑자기 훼방꾼이 나타났다.
둘의 대화를 먼발치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다 못해 아예 밥솥을 엎어놓고 말았다.
두 모자의 대화가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언제든 중간에 끼어들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남편이다. 둘 만의 대화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논쟁임에도 남편이 끼어들면서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질 때가 있다. 중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정작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지도 못하니 말이다.
물론, 남편은 이런 때일수록 '둘 사이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 내가 판단해 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의 자세로 나온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예 모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엄마가 요구하는 사항이 어긋나 둘이 싸우고 있구나, 정도가 남편이 이해한 전부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중재가 이루어지겠는가.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숙제와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소지품을 정리하지 않고 쓰레기마저 들어차 어수선해진 방을 청소하라고 지적할 때
숙제를 도와달라고 해서 서로 의논하고 있을 때
이런 때 무작정 끼어들어서는, '애가 하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 둬라'라고 말하는 것이 남편이 지금껏 중재랍시고 내린 결론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 시간' 공부가 실제 한 시간이나 소요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말이다. 하루에 다섯 시간씩이나 공부하라고?
실제 공부 시간에 대해 아빠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것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아들... 앞뒤 상황도 모르고 끼어들어 흥분한 상태인 남편... 이 두 남자가 합세해 내가 얼마나 잔인한 엄마인지 한창 토론을 벌이는 걸 잠시 지켜봤다.
아빠와 함께 한창 엄마 흉보기에 나섰던 아들이 주춤했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두 시간 반이면 끝나는 일로 이토록 아들이 반발했단 말인가? 두 모자가 앞서 나누었던 과목별 성적에 대한 논란도 덧붙이고 나니 더더욱 할 말을 잊은 듯하다.
제발 흥분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고요.
나도 부족한 엄마라는 거 알고 있다고요.
이렇게 싸워도 좋고 내 흉을 봐도 좋으니까, 말로 하자고요.
상대가 말하는 걸 듣고, 의논도 하고, 불평도 해야 상황이 개선되잖아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들어줄 테니까, 너도 엄마 말을 잔소리로만 받아치지 말고 들어 달라고.
커버 이미지: Photo by Mike Scheid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