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대문을 열고 나오는 에이미와 마주쳤다. 서로 이웃이 된 지 5년 정도 되는 사람이다.
나 + 에이미 ... 나 + 에이미 남편 톰 ... 내 남편 + 톰 ... 내 남편 + 에이미 ... 이런 다양한 조합으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대화가 오가는 편인데, 나와 에이미 조합이 결성되기만 하면 말이 길어지는 성향이 있다.
물론, 둘이 마주치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루 1회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진정한 집순이인 내가 옆집 사람과 마주칠 확률 자체가 희박하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서로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워 계획에도 없던 수다를 이어가곤 한다. 동네를 산책하는 길에 마주쳤던 그 희귀한 순간에는 아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30여분이나 수다를 떨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둘 사이가 각별한 건 아니다. 수다를 즐기는 사람의 특성이 그렇듯, 서로 죽이 맞다 싶으면 아무 하고나 특별한 주제 없이도 이것저것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 나누니까.
얼마 전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한 키안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의 갈팡질팡 대화는 자연스레 자녀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에는 엄마와 떨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해 유아원 건물이 보이기만 하면 울기 시작하던 아이가 일주일도 안 되어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해서 에이미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막 두 돌을 넘긴 키안을 키우는 이야기만으로도 두 여자의 수다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십수 년 전 내가 아들 키우며 겪었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하고, 육아와 살림, 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살아야 하는 피곤한 부모의 삶이 엿보여 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란 얼마나 이쁜가.
한창 자기 아들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미안했던지, 에이미가 우리 아들에 대한 궁금증을 내보였다.
아들의 근황을 간단히 전하는 말이지만 여러 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다른 대학교에 비해 입학 시기가 2주나 늦은 편이라 이미 또래 아이들은 직장이든 학교든 다닐 시기에, 집에서만 지내는 울 아들의 사정이 궁금했을지 모르겠다 싶어 한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들의 특이한 습관을 해명하기 위해서다.
저녁 8시마다 시작되는 가족 운동 시간에 맞춰 아들은 기본 동작을 하고 나면, 자신의 운동 구역에 해당하는 정원으로 나가 달리기를 한다.
우리 집 정원이 운동장으로 활용해도 될 만큼 무한정 큰 건 아니다. 테두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간이 잔디만 깔려있는 공터에 해당하기에 정원 한쪽 모서리에서 반대쪽 모서리까지 왕복으로 달리면 운동 효과는 볼 수 있는 정도다.
영국의 가정집 정원은 이웃과 담장을 공유하는 구조가 흔한데, 우리의 경우 에이미 집과 마이클 집까지 두 개 집 정원의 담장과 맞대고 있다. 저녁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이웃집 아이가 정원으로 나와 뜀박질 하는 괴이한 광경을 두 집에서 족히 구경할 수 있는 셈이다. 2층 침실에서 내려다본다면 서너 집 건너편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을 테다.
이제 다음 달이면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기도 하다.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에이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새롭게 질문을 던졌다.
아들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려는데 학교로 주제가 넘어가 버리네.
내 남편에게서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최근 들어 아들의 합격 비결에 대한 질문을 몇 차례 들었다. 합격 당사자가 아닌 그 부모 입장에서의 비결 말이다.
영국인인 에이미에게 내 브런치 글을 읽어보라 할 수도 없고 난감해진 나머지 '내가 한 게 뭐 있어야지'라고 얼버무린 뒤 아들의 집 떠날 준비로 화제를 돌렸다.
야채 다듬기와 쓰레기 처리, 정원 관리, 청소, 다림질까지 직접 하는 아이인데, 이제 집을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고 했다.
허...
두 살짜리가 벌써 야채 필러를 쓴다고? 나의 놀라는 표정을 본 에이미가 어린이용으로 안전하게 제작된 필러가 있다고 했다.
집안일을 잘 거들어주던 아이가 떠나고 나면 허전할 것 같다는, 철없는 엄마의 하소연으로 한 말을, 에이미는 자녀를 명문대 보내는 비법으로 오해한 듯하다. 자기도 아들 교육에 힘쓰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면서까지 말이다.
집안일과 학업 성적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아는 바 없지만, 영국적 환경에서 따진다면 가정에서의 집안일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의 학생 중 대학에 다니는 동안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8%였던 것이, 최근 20여 년 사이 20%까지 올랐다고 한다. 영국의 집값과 물가 상승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8%든 20%든, 부모와 함께 살며 대학을 다니는 친구가 훨씬 더 많았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전혀 딴판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인 케이든은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도시요, 부모가 아직 살고 있는 지역 내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기숙사를 선택했다.
성인이 된 아들을 둘이나 둔 친구 메나는 아들이 집에 와서 장기간 머물 경우 하숙비를 받기로 못 박았다.
대학을 다니지 않더라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나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일지 모른다.
다만, 부모의 보호 안에서 살다가 갑자기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독립해 지내면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빨래와 청소, 요리 정도는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미리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우리 집에서는 어릴 적부터 아들에게 각종 집안일을 직접 해보도록 지도해 왔다.
아들이 집안일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시간 순서대로 모은 것이다.
만 아홉 살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이 제일 첫 기록이다. 당시 '어린아이에게 어쩜 그토록 힘든 일을 시키나'라며 이웃에서 비난할까 내심 걱정도 했다. 다행히, 아무도 대놓고 우리 부부를 나무란 일은 없다. 오히려, 우연히 발견한 웹사이트를 보고 자신감마저 생겼다.
아이에게 어떤 집안일을 언제 시켜야 하나 궁금해하는 부모를 위해 나이대별로 추천하는 집안일 목록이 상세히 나와 있다.
집안일은 아이가 책임감과 자립심, 자신감을 기르는 행위이며 스스로 가치를 인정받는 기회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옆집 에이미도 그러고 있군. 진작 이 웹사이트를 참조할 걸 그랬다.
* 글에 언급된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소개된 각 일화도 약간씩 각색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workparentbalance.com
끝